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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의 경제세상]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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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통령께서는 이제 세계의 희망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세계의 희망으로 떠올랐으니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닙니다. 변화와 진보·통합이라는 메시지 때문에 광(狂)팬이 된 사람도 허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란 단어를 다시 쓰는 건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입니다. 이제 위기 극복은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 됐습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은 이제 당신이라면 능히 위기를 극복해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실패하면 세상은 참담해지고 희망이 사라집니다. 어쩌면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가 칠지도 모릅니다.

동아시아의 변방에 있는 한 조그만 나라의 기자가, 미국 경제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편지를 쓰는 건 이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성공해야 미국도 살고 세계도 산다고 믿어서입니다. 물론 한국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잘돼야 한국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한국만의 이익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결코 아닙니다.

GM 등 빅3 자동차 메이커에 갖고 있는 애정은 잘 알겠습니다. 상당수 미국인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혹시 들어 보셨는지요? 한 미국인 병사가 자동차만 보면 경례를 붙이기에 상사가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장군(제너럴)을 보면 무조건 인사를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GM의 옛 이름이 제너럴 모터스입니다.

빅3는 200만 명의 일자리를 갖고 있으니 고용을 중시하는 대통령께서 애착을 갖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 빅3가 파산했다고 해서 근로자들이 다 일자리를 잃는 건 아닙니다. 이를 통해 빅3가 건강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고가의 중대형차에 집중한 경영전략, 장기 비전 없는 근시안적 경영, 경쟁사보다 훨씬 높은 임금과 복지 혜택 등 지금의 상태로는 경쟁력 되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일시적 자금 지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므로 국민의 혈세만 낭비할 뿐입니다. 과거 한국에도 비슷한 예가 있었습니다. 12년 전 기아자동차란 회사에 ‘국민기업’이라는 이유를 달아 혈세가 투입됐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 후 강력한 구조조정을 거쳐 현대자동차에 매각됐습니다.

빅3 지원은 아주 심각한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큽니다. 미국이 하는데 나라고 못 할쏘냐며 다른 나라들도 뒤따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보호무역주의로 흘러가겠지요. 스웨덴과 영국·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도 자국 자동차 회사를 지원했거나 그럴 태세입니다. 자동차뿐이겠습니까. 다른 산업에도 파급됩니다. 대만 정부가 반도체 회사에 자금을 지원한다고 하고, 인도는 철강 제품에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반세기 동안 공들여 쌓아 왔던 자유무역이란 금자탑이 무너지면 무역장벽과 보호무역이 그 자리를 메울 것입니다. 실제로 1930년대 대공황 때 이런 사태가 벌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여기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는 건 대통령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방침도 철회됐으면 합니다. 자동차처럼 미국에 불리한 부분도 있겠지만 전반적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든 개인이든 협상이란 강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발과 그 뒤의 주먹이 결과를 좌우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이 아무리 협상을 잘한들 미국만 하겠습니까. 유리한 협정을 미국에 더 유리하게끔 만들기 위해 재협상 카드를 빼든 게 아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이익에도 장기적으로 부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취임하자마자 경제위기와 씨름하느라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시겠지요. 하지만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 주십시오. 경제위기를 잘 극복해 훗날 미국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도 성공한 대통령, 존경받는 미국으로 평가받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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