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해상의 남북 함포사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남북한 경비정이 5일 서해상의 9백 지근(至近)거리에서 대치하다 경계포격을 한뒤 헤어졌다.직접충돌 없이 끝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북한 경비정이 월경(越境)하고서도 먼저 사격을 하자 우리측은 북한 경비정 선미(船尾)뒤에 정확한 위협사격을 가함으로써 그들을 물러나게 했다.경계와 응징의지를 함께 보여준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도 유사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당국의 지속적 경계와 신중한 대응이 요청된다.자칫하면 우발적 사고가 큰 사태로 번질 수 있다.북한군은 최근 인선국씨 등 두 가족의 해상탈북 이후 해상경계를 크게 강화했고 더이상 탈북이 있어선 안된다는 불안감마저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이번 월경포격은 계획된 무력도발이기 보다 탈북자방지를 위한 경계강화라고 볼 수 있다.북의 기근상황이 계속되면서 경계망이 약한 서해안쪽이 유력한 탈북 경로가 될 수 있고,고기잡이 자체가 식량난을 해소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해상경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또 북의 해군인들 식량보급이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경계강화에 따른 긴장과 배고픔이 어떤 형태로 나오게 할지도 예측불허다.

북방한계선을 넘는다는 것은 명백한 휴전협정위반이고 발포의 사유가 될 수 있다.그러나 해상경계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일 북한군을 자극해선 어떤 불의의 큰 사태로 번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때문에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엄중한 경계를 하되 성급한 발포나 공격을 해선 오히려 북쪽에 시비거리의 빌미만 제공할 수 있다.이번에도 북한군이 먼저 월경하고 발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남쪽의 무력도발이라고 뒤집어 씌우고 있다.군사정전위를 통한 강력한 항의로 더 이상의 남북간 긴장관계가 조성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어선보호가 아니라 대선정국으로 어지러운 남쪽의 경계태세를 떠보려는 북의 고의적 포격이라는 관점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군부세력이 지금 북한을 주도하고 있는 한 무력남침 위험에 대한 경계는 조금도 늦춰선 안된다.식량기근에 지친 북한 민중들 사이에서 전쟁이라도 났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다고 한다.북의 군부세력이 이를 빌미로 작은 충돌을 국지전으로 이끌어가지는 않을지 이 또한 우려치 않을 수 없다.신중한 경계와 즉각적 응징이라는 두 전략을 동시에 구사해야 하는 어려움이 그래서 우리 군에 남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