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파일>일그러진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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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할리우드와 유럽 몇나라,그리고 홍콩을 제외하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외국영화는 별로 없다.요즘 나라안이 워낙 시끄럽다보니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 싶지만 문민정부 초기에는 세계화로 시야를 넓히자는 구호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88년 올림픽이후 잠깐 볼 수 있었던 동유럽 영화조차 쏙 들어가 영화를 통한 세계인으로서의 시각 넓히기는 매우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는'피아노'와'스위티'의 제인 캠피온 감독을 배출한 나라로 미지의 세계 수준은 겨우 벗어났지만 캠피온 영화 외에는 마우리족 가정을 그린 리 타마호리 감독의'전사의 후예'와 금광을 찾아온 중국이민자들의 애환을 그린 레온 나르비 감독의'불타는 투혼'정도다.

최근 출시된'일그러진 사랑(Broken English)'(드림박스.사진)은 그레고 니컬러스 감독의 95년 작품으로 이민자가 많은 뉴질랜드의 현실을 한 청춘남녀의 사랑을 통해 짐작케 한다.민족의 정체성 지키기,이민자의 뿌리내리기,다민족이 어울려 살아가는데 따른 갈등등. 불법 이민자들을 고용한 레스토랑 여주인이 이들을 현지인과 결혼시켜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것이라든가,철학 교수였던 중국인이 접시닦이가 된 자신을 자학하는 모습,타민족과의 사랑을 극력 반대하는 아버지를 통해 민족이나 국가의 벽을 넘어 인류라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뉴질랜드 수도 오클랜드에 정착한 크로아티아인 가정의 아름다운 딸 니나(알렉산드라 비크)와 마우리족 청년 에디(타에무라 모리슨)가 사랑에 빠진다.보스니아 내전의 기억이 생생한 니나의 아버지(라데 세르베드지아)는 교황의 “용서하라”는 메시지에 화를 내며 딸을 방안에 가둔다.니나의 방 창앞에 나무를 심는 에디의 사랑.

비디오칼럼니스트 옥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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