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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M&A서배운다>5. 디즈니의 ABC인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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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1=4.머리 좋다고 이름난 마이클 아이즈너 디즈니 회장의 산수실력이다.전문용어로는 시너지 즉 따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를 붙여놓으때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하드웨어를 가졌으면 소프트웨어를 사고,TV방송국을 소유하고 있으면 영화사를 산다.

빌 게이츠가 할리우드의 스필버그(영화감독).카젠버그(제작자)와 손잡고 드림웍스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방송과 오락,소프트와 하드,제작과 배급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95년 7월31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디즈니의 ABC인수는 이런 거역할 수 없는 추세에 편승,적극적으로 시너지를 창출해보려는 시도였다.당시 디즈니는 핵심사업인 TV제작이 케이블TV의 추격으로 활기를 잃고 있었다.방송.오락산업을 휩쓴 매수합병인수(M&A)바람은 자칫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불러 일으켰다.ABC도 사정은 마찬가지.ABC를 비롯해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NBC.CBS와 지역방송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멀티미디어산업이 본격화될 경우 TV만으론 생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게다가 NBC는 이미 GE라는 강력한 후견자를 확보했고,CBS는 웨스팅하우스가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따라서 양사의 결합을 위한 분위기는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었다.남은 것은 누가 먼저 운을 떼느냐 하는 것.결국 ABC를 잘 알고(아이즈너는 76년 파라마운트사로 옮기기까지 10년간 ABC에 있었다)자금력이 풍부한(당시 총자산 1백28억달러중 부채는 불과 30억달러)디즈니가 나섰다.

이야기는 발표 6개월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아이즈너 회장은 톰 머피 ABC 회장과 우연히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얼마면 ABC를 팔겠느냐'고 물었다.머피는'글쎄,주식을 맞바꾸면 어떨까'로 가볍게 대꾸했고 더이상 진전은 없었다.아이즈너는 곧바로 내부전략팀을 구성,양사의 적정주가를 분석하도록 지시했다.

7월15일 열린 한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ABC 대주주인 억만장자 워런 버펫을 우연히 만난 아이즈너는 자신의 인수의사를 밝히고 머피와 자리를 주선해주도록 부탁했다.비록 3분으로 끝난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피는 아이즈너의 인수의사가'진짜'임을 확인했고 합병후의 성장가능성을 내다본 머피는 어떤 형태로든 디즈니의 주식과 교환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증권회사등 중개인 없이 실무진만 대동하고 두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0일후였다.가격결정만 남은 상태에서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돼 2시간30분만에 ABC주식 1주당 디즈니 1주와 현금 65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TV.라디오.영화(제작과 배급).케이블TV.테마파크.출판등을 골고루 갖춘 매출 1백87억달러짜리(96년 기준)공룡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선 아이즈너는'21세기 세계 최대의 오락기업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권성철 전문위원

<사진설명>

구피(미키마우스 친구)로 묘사되는 마이클 아이즈너 디즈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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