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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찾아서>28. 천주산 三祖禪寺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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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묻는다:원하옵건대 해탈법문으로

이 몸의 속박을 풀어 주십시오.

답한다:누가 너를 묶어 놓았는가.

묻는다:아무도 저를 묶은 사람은 없습니다만… .

답한다:그렇다면 너는 이미 한껏 자유롭다.

그런데 어찌해서 해탈을 구하고 있단 말인가.

불교 제3대 조사 승찬(?∼606)에게 어느날 한 사미(沙彌)가 찾아와 참문한 선문답이다.화두로는 ‘수박여(誰縛汝)’라 한다. 참문한 사미승은 후일 제4조가 된 도신(580~651)이었다.

해탈을 구하는 도신의 물음에 대한 승찬조사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인간 존재의 밑바탕인 자성(自性)은 본래 속박된 일이 없다는 존재의 절대자유론이다.

자성(마음·불성)은 원래가 청정하고 절대 자유로운 본질을 가지고 있다.그럼에도 우리는 공연히 생각을 일으켜 속박당하고 있다는 망상을 하고,그래서 스스로 부자유스럽다는 굴레를 뒤집어쓴다.

우리 마음은 본래 어떠한 것에도 속박된 일이 없다.따라서 새삼 절대자유라는 해탈을 구할 필요조차 없다.

자성 그대로가 해탈이요,열반이요,부처이기 때문이다.자성을 따라 즉각 행하고 일체의 분별심을 없애 평등도,차별도 없으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해탈이다.이른바 달마에서부터 내려온 ‘안심법문(安心法門)’이다.

이같은 안심법문은 초조 달마-2조 혜가,혜가-3조 승찬,승찬-4조 도신까지 4대 조사에 걸쳐 똑같은 포맷으로 강조된 초기 선종의 심요(心要)다. 후대로 내려와서는 6조 혜능의 손자 상좌인 석두희천선사(700~791)와 마조도일의 법제자인 대주혜해선사에도 같은 내용의 선문답이 있다.

석두는 한 중이 “어떤 것이 해탈이냐”고 묻자 “누가 너를 묶어 놓았는가(誰縛汝)”라고 반문했다. 대주도 “어찌해야 진정한 해탈을 이룰 수 있느냐”는 한 학인의 참문에 “너는 본래 속박당한 일이 없으니 해탈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일깨워줬다.

천주산(일명 환공산) 삼조선사 답사에서는 우선 3조와 4조가 주고 받은 이 선문답의 ‘육성’을 오늘에 다시 들어보고 싶었다.주지한테 물으니 3조가 참선했던 동굴(三祖洞)이 있는데 거기가 ‘수박여’문답 장소란다.지객승(知客僧)의 안내로 대웅전 뒤 삼조동을 찾아갔다.

‘해박석(解縛石)’.

문자 그대로의 뜻은 속박을 풀어준 바위다.좀 과장해 마당만한 바위가 평평하게 누워 있는데 그 위에 큰 글자로 ‘해박석’이라 음각하고 중국의 전통적 국색(國色)인 빨간색으로 페인트칠을 해 놓았다.삼조동은 바로 이 바위에 연결돼 있다.

동굴 안에는 승찬조사의 진영(眞影)을 컬러로 그려 봉안해 놓고 예배한다.승찬조사의 진영을 보니 1천5백년전의 3조와 4조 선문답 육성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수박여’라는 화두는 오늘도 이렇게 삼조동굴에서 퍼져나오는 사자후를 통해 인간을 온갖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있지 않은가!

동굴 입구에 설치한 대리석 문틀 위에 새긴 ‘삼조동’이란 표지글자는 그리 큰 글씨는 아니지만 ‘인간해방’을 설파한 승찬조사의 육성을 듣고 나니 그 세 글자가 우주보다도 훨씬 더 커 보인다.

다음은 사찰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3조탑으로 갔다.8면 5층 전탑인데 높이가 30m나 되는 웅장하고 화려한 묘탑이다.사리탑인데 당나라 초기인 745년 건립된 뒤 그 후 몇차례 중수됐다.

문화혁명때 탑 안에 봉안됐던 3조상과 기단 부분이 훼손됐는데 최근 말끔히 복원됐다.탑의 층개(層蓋)장식이 아주 화려하다.탑명은 ‘각적탑(覺寂塔)’이다.

원래 탑은 수나라때 건립됐으나 772년 당 태종이 ‘감지선사(鑒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847년 사찰과 탑을 대대적으로 중수했다.

내부에 층계를 설치해 올라다닐 수 있는 공심탑(空心塔)인데 기단부 1층 공간 각 면엔 선어록의 명구를 새긴 벽비(壁碑)가 있다.

불법은 본래 세간에 있나니(佛法在世間),

세간을 떠나지 않고 깨쳐야 한다(不離世間覺).

세간을 떠나 보리를 구함은(離世求菩提),

마치 토끼의 뿔을 찾는 것과 같다(恰如覓兎角).

벽비에 새겨진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6조 혜능의 ‘무상송(無相頌)’이다.성계(聖界)와 속계,불법과 세속법의 일치를 통해 이 지상에서 극락의 살림을 꾸려가는 생활불교·실천불교를 강조한 혜능조사의 법문이다.

혜능의 원래 법어는 ‘불법은 본래가 세간에 있다(佛法元在世間)’뿐이었으나 후대에 살을 붙여 이같은 게송의 형태로 다듬은 것이다.

선종 1조 달마를 전후한 동토(東土) 선불교는 3조 승찬을 거쳐 4조 도신에 이르면 경전에 의지해 깨침을 얻는 자교오종(藉敎悟宗)의 초기 선풍을 버리고 불교의 세속화라는 종교개혁을 단행,이같이 생활불교화한다.

3조 승찬의 체취를 풍기는 또하나의 중요한 유적은 ‘입화탑(立化塔)’이다.대웅전에서 북쪽 산문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옆의 큰 나무 밑에 있다.바로 승찬조사가 선채로 입적했다는 곳이다.3조 승찬은 606년 이 나무 밑에서 대중설법을 마치고 나서 합장한채 입화(立化)했다.선 채로 숨을 거두는 입화는 앉은 채로 입적하는 좌화(坐化)와 함께 불교 열반미학(涅槃美學)의 극치다.

3조의 입화탑은 사람이 두 명 정도 들어갈 만한 원통형 석탑인데 향객(香客:중국에선 불교신도를 흔히 향객이라 한다)들이 향을 사를 수 있는 향로를 설치해 놓았다.

3조는 천화(遷化)후 다비에서 3백과의 사리가 나왔는데 1백개만 탑 안에 봉안하고 1백개는 황실에,1백개는 서주(舒州)부윤에게 각각 보냈다고 한다.

원래 삼조사는 위진남북조때 창건돼 원명이 산곡사였던 고찰이다.지금도 양 무제 친필의 ‘산곡사(山谷寺)’편액이 경내 산문에 걸려 있다.

당 숙종때 ‘삼조산곡건원선사(三祖山谷乾元禪寺)’로 개칭돼 속칭 삼조사로 불려왔고 지난 90년 중국 불교협회장 조박초가 쓴 ‘삼조선사’ 편액을 달았다.

삼조사가 위치한 천주산과 주변의 사공산·투자산은 초기 선종의 선장(禪匠)들이 주석했던 선불교 성지다.주지 굉행화상에 따르면 복원중인 사공산 이조사(二祖寺)는 거리가 1백13㎞나 되고 산이 험해 가기가 어렵단다.

원래 1조 달마부터 6조 혜능까지 6명의 조사중 3조 승찬은 신원이 가장 불분명하다.그에게 법을 전해준 2조 혜가가 사공산에 내려왔다는 사실도 전설적이다.따라서 3조는 선종사(禪宗史) 정립을 위해 후대에 가탁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답사를 끝내고 삼조사 앞을 흐르는 잠하(潛河)를 따라 나오다 동진(東晋) 성화연간인 346년 건립된 동사(童師)스님 사리탑 태평사탑(太平寺塔)을 둘러보고 안휘성 성도 합비를 향해 달렸다.다음날 복건성으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잠산에서 합비까지는 4백여㎞의 여로였다.도중 동성현 현 소재지에서 점심식사를 했다.찾아 들어간 식당의 아가씨 서비스가 만점이다. 개방화 물결이 아직 크게 밀려오지 않은 시골은 옛 사회주의 때가 그대로 잔존,아직도 접시를 집어던지다시피 놓는등 서비스 개념조차 없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예외다.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18세의 앳된 소녀인데 수줍은 미소가 감도는 얼굴로 접시도 자주 바꿔주고 담뱃불도 붙여주는등 아주 바지런하다.

식사를 끝내고 팁으로 5달러를 주었더니 끝내 사양한다.세번이나 승강이를 했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말았다.처절한(?)패배끝에 식후 끽연을 하는데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백지 한장과 볼펜을 내민다.

사연인즉 한국 손님을 만난 인연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으니 한문으로 글을 한줄 남겨 달란다.

당황스러웠다.팁 몇푼으로 광을 내려던 졸부적인 기자의 패기는 그만 이 중국 시골소녀의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높은 문화의식 앞에서 졸지에 쥐구멍을 찾기에 바빠지고 말았다.어쨌든 공을 받았으니 다시 넘겨야 할 사정이었다.

낙운성시(落韻成詩)로 시를 읊을 재주도,산문이라도 한줄 남길만한 한문실력도 아니니….이마에 진땀이 솟는다.

한 잔 마신 맥주에 곤혹스런 심정이 겹쳐 얼굴이 홍당무인채 볼펜을 들었다.산골 동네동네마다에 만개한 춘삼월 살구꽃이 차창을 꽉 채우며 들어오던 막 달려온 여로가 떠오른다.총동원령을 내려 머리 속에 어른거리는 선인들의 한시 구절을 모자이크해 소녀의 청에 답했다.

살구나무 가지 다닥다닥 붉게 핀 살구꽃 춘정을 속삭이는 소리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고(紅杏枝頭春意 ),

간간이 울어대는 숲속 꾀꼬리 소리는

꽃잎 밑에서 나뒹구는구나(間關鶯語花底滑).

깊은 산속 옹달샘 물은 콸콸 흘러내리는

계곡물 아래서 졸졸 흐르기에 어려움을 겪는데(幽咽泉流水下難),

창에 비친 산색은 쪽빛처럼 푸르게 푸르게만

흘러가고자 하는구나(山色當窓翠欲流).

증명:月下 조계종 종정·圓潭 수덕사 방장

글:이은윤 종교전문기자 사진:장충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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