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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돈 카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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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돈 카밀로. 이탈리아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조반니노 과레스키(1908~68)의 소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무대는 포강 유역의 작은 마을 바사.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신부, 돈 카밀로는 골수 공산당원인 읍장 페포네와 으르렁거리는 사이다. 돈 카밀로가 성당의 종을 쳐 공산당 집회에 훼방을 놓으면 페포네가 사제관 앞에 놀이시설을 늘어놓고 소음 공해로 앙갚음을 한다. 유치한 다툼은 주먹질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이 ‘막장 드라마’로 치닫지는 않는다. 어느 날 페포네가 고해성사를 하러 온다. 돈 카밀로는 “두 달 전 밤 당신에게 몽둥이 세례를 한 게 바로 나”라고 고백하는 페포네의 죄를 어쩔 수 없이 신의 이름으로 사해주지만 속은 영 개운치 않다. 예수에게 양해를 구한 뒤 페포네의 등을 걷어찬다. 페포네는 “이제야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하고, 둘의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과레스키가 『신부님…』 시리즈 집필을 시작한 것은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년간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조국은 극심한 좌우 대립으로 분열돼 있었다. 그는 중도 노선의 주간지를 창간해 공산당과 기독민주당 모두를 비판하다 명예훼손죄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가 숨진 것도 감옥에서 얻은 심장병 때문이었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과레스키는 이탈리아인들이 자신의 소설을 읽고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웃을 수 있길 바랐던 것 같다. 나름대로 내렸던 갈등 극복의 처방도 담았다. ‘모든 인간은 선하다’는 믿음으로 소통하고, 이념 대립의 상처를 치유받자는.

30년간 기업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해온 미국의 조셉 그레니는 『결정적 순간의 대면』에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저쪽은 원래 그래’라는 선입견이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갈등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을 위한 갈등 해결의 기술』(팀 어시니)도 맞서 싸우거나 철저히 회피하는 것은 두 개 다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한다. “눈을 마주보며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태도보다 관심사를 파악하라”는 것이다.

올해도 정치와 사회 각 분야에서 대립과 갈등이 그치길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싸우더라도 상대방의 주장이나 논리보다 저의(底意)와 태도부터 공격하는 일은 삼가도록 하자. 돈 카밀로의 질박한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때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