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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카바레' 내달 브로드웨이팀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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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카바레’는 양날의 칼이다.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드러내면서도, 사회를 향한 독설과 비판은 예리하기 짝이 없다. 퇴폐적인 공간 카바레를 통해 이성과 감성,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풀어간다.

막이 오르면 무대는 온통 캄캄하다. "채~앵!"하고 적막을 깨는 심벌즈 소리. 조명이 조금씩 고개를 들면 허름한 장소가 나타난다. 테이블 위에는 붉은 램프가 켜져 있다. 배우들이 직접 색소폰을 불어댄다. 무대 뒤에선 공공연히 마약과 매춘이 자행된다. 영락없이 1930년대 독일 베를린의 카바레다. 퇴폐와 향락에 찌들었던 공간, 동시에 나치 치하의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조롱이 넘쳐났던 곳이기도 하다.

7월 3~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뮤지컬 '카바레'가 막을 올린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타락한 몸짓 속에 사회를 향한 풍자의 칼날이 예리하게 숨어 있는 작품이다.

사실 카바레의 국내 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85년에 극단 민중이 처음 무대에 올렸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공연됐다. 2002년에는 최정원과 주원성 등 국내 배우들이 공연했다. 그러나 '절반의 실패'로 막을 내렸다. '카바레' 특유의 끈적끈적한 무대도 없었고, 객석을 향해 날리는 비수도 없었다.

당시 공연을 기획했던 신시뮤지컬컴퍼니 측은 "그때만 해도 국내 관객들이 수용하기엔 '카바레'의 소재가 너무 파격적이었다"며 "그래서 에로티시즘과 동성애적 코드 등 선정적인 요소들을 일부러 무디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카바레'는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배경이 퇴폐적일수록 비판은 더욱 예리하게 날이 서는 법이다. 결국 '카바레'는 녹슨 창이 되고 말았다. 화끈한 쇼도, 명쾌한 메시지도 없었다. 배우들의 캐릭터는 어정쩡했고 원작의 매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더욱 눈길을 끈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팀이 직접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팀의 내한 공연도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레미제라블'도, 2003년 '캐츠'도 브로드웨이팀은 아니었다. 2년 전의 실패를 거울 삼아 CJ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다시 '카바레'를 기획한 신시뮤지컬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는 "'카바레'의 원래 색깔을 살리지 못한 점이 내내 아쉬웠다"며 "이번 공연으로 '카바레'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가장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란 평가를 받는 샘 멘더스 버전이다. 4년 전 영화'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며 유명해진 멘더스는 사실 연극 연출가 출신이다. 11년 전 그는 영국에서 뮤지컬 '카바레'를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66년에 초연, 지금껏 8000회가 넘게 공연된 '고전'에 칼을 댄 것이다. 그리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스타일리스트이자 철학자다. 삶을 꿰뚫는 특유의 직관력과 통찰력은 '카바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적재적소에서 공간과 배우를 만나게 하는 미술적 감각도 탁월하다. 여기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이고 허무한 이미지의 카바레 MC와 여배우의 겨드랑이 털까지 보여주는 파격으로 '샘 멘더스 버전'이란 타이틀을 따냈다.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이번 무대는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선 주로 1000석짜리 중극장에서 공연됐다. 무대가 진짜 카바레처럼 느껴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탁 트인 공간에서 어떻게 꽉 차는 무대를 뽑아낼지가 이번 공연의 관건이다. 관객은 극장이 아니라 '카바레'에 앉길 바라기 때문이다. 02-577-1987.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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