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탐색. 최형우 선택. 이회창 탈출로 金心이동 - 새대표지명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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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이회창(李會昌)대표 지명은 역사적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그가 유리한 대세론의 고지를 잘 활용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97년 3월초의 10여일간'은 중요한 역사가 된다.

그 기간의 진상은 13일 현재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반전(反轉)과 전환이 있었다고 관측될 뿐 의문들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아직 없다.金대통령.李대표.최형우(崔炯佑)고문등 핵심 주역들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여권에서 정리된 다수설은 김심(金心)이 이한동(李漢東)고문에 대한 탐색→최형우고문 선택→이회창고문으로의 탈출이라는 행로를 밟았다는 것이다.金대통령이 2월말에 이한동고문을 만난 이래 신문지상에서는 양측의 줄다리기가 벌어졌다.YS를

대리한 강인섭(姜仁燮)정무수석은 경선포기라는 압력을 가했고 李고문은 거부로 버텼다.

이런 상황에서 崔고문을 대표로 입성시키기 위한 민주계의 작전이 시작됐다.崔고문측에서는“대표를 위해 경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동시에 같은 민주계인 김덕룡(金德龍)의원은 청와대쪽에'이한동대표'에 반대하는 뜻을 강력

히 전달했다고 이한동고문측은 파악하고 있다.

적잖은 민주계 소식통은“金대통령이 민주계의 뜻을 받아들였고 崔고문이 쓰러지기(11일)하루나 이틀전 崔고문이 대표지명을 통보받았다”고 설명한다.崔고문을 만났던 한 3선의원은“崔고문에게 9일 통보되었다”고 주장했다.여권의 고위 관계자

도“대표가 崔고문으로 결정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최형우 낙점설을 지지했다.그렇게 굳어진 상황에서 崔고문의 뇌졸중이라는 돌발사태가 터졌고 YS는 급히 대안을 물색했다고 소식통들은 분석한다.이때 김심을 결정적으로 압박한 것은 김현

철(金賢哲)씨의 의혹사태(沙汰).金대통령은 경선의 공정성같은 문제보다 난국수습의 명제에 초조하게 매달렸고 결국 대세론을 타고 있는 이회창고문을 과감하게 선택했다고 다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李대표는 자신에게 벌어진 놀라운 사태발전을 과연 언제 알았을까.한 측근은“12일 아침 金대통령이 李고문을 불렀을 때만 해도 李대표는 정말 몰랐던 것같다”고 소개했다.이것이 사실이라면 李대표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처지가 확 달라진

것을 안 또 한명의 역사인물이 된 셈이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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