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의Food&Med] 위험수위 넘은 어린이 비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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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사람의 몸은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방이 풍부한 음식을 탐닉하고, 체지방 비율을 현상 유지하고 싶어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기아에 대비해 가장 오래 타는 연료인 지방을 몸 안에 쌓아두고 싶은 거다.

살이 찐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지방을 몸 안에 축적하는 능력이 뛰어나 먹을 게 부족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만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고혈압에서 당뇨병·발기부전·대장암에 이르기까지 각종 성인병에 두루 연루된다. ‘만병의 근원’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 붙는다. 일부 국가에선 아예 질병으로 분류한다.

특히 어린이 비만은 성인 비만보다 ‘악성’이다. 지방세포의 용적이 커지는 성인 비만과 달리 어린이 비만은 지방세포의 수가 늘어나서다. 이렇게 증가한 지방세포의 수는 평생 갈 수 있다. 또 어린이 비만의 80~85%가 성인 비만으로 넘어간다.

국내에서 어린이 비만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어린이(2~18세) 비만율이 1998년 5.8%에서 2005년 9.7%로 늘었다. 같은 기간 청소년(12~18세) 비만율은 8.7%에서 16%로, 성인 비만율은 26.3%에서 31.5% 증가했다. 어린이 비만이 청소년·성인의 비만을 견인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이 제정됐다. 앞으론 학교내 매점·자판기 등에서 고열량·저영양 식품을 팔 수 없게 된다. 어린이의 TV 시청 시간대엔 고열량·저영양 식품에 대한 광고도 제한·금지된다.

어린이 기호식품에 대한 신호등 표시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안도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상정됐다. 식품신호등 표시제는 어린이 기호식품을 당·지방·포화지방·나트륨 함량에 따라 빨간색·노란색·녹색으로 구분해 어린이가 쉽게 해당 식품의 영양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관련 업계의 반대가 심하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예상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어린이가 ‘맛’보다 ‘붉은색’에 더 관심을 가질지도 불분명하다. 식품공업협회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매출이 금액 기준 5조2000억~8조7000억원이나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대형 식품회사 11곳에서 판매하는 어린이 기호식품의 93.2%가 빨간색 표시를 하나 이상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린이 비만의 원인은 매우 다양해 단순 해법으론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정부의 대책이 식품에만 집중되는 것도 실효성을 낮춘다.

다이어트(diet)는 고대 그리스어의 ‘diatia’에서 유래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이란 뜻이다. 신호등 표시제의 도입을 고려하면서 체육시간을 줄이는 것은 난센스다. “테러보다는 비만으로 망할 것”이란 비아냥까지 들은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고도 국민 평균체중이 해마다 무거워지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비만율 낮추기는 콜레스테롤·혈압 떨어뜨리기보다 훨씬 힘들다. 우리 정부에 더 정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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