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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와 백야, 그리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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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15면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슬아슬한 협곡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의 피오르

북유럽은 알다시피 한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나라다. 우리가 북유럽을 간 시기에는 백야가 끝난 시즌으로 ‘지구가 둥글어서’ 생긴 범상치 않은 자연의 기현상을 목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직감으로는 백야 현상과 노르웨이의 엄격한 술 판매 금지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노르웨이로 가는 기차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보태지자 심중은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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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의 반은 밤이고, 일 년의 반은 낮이라는 초자연의 세계에 살고 있는 노르웨이인의 집을 방문하라. 아마 그도 당신처럼 조용히 흐느끼고 있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내달리면서 끝도 없이 펼쳐지는 침엽수림의 곧고 광활한 기개에 넋을 빼앗겼던 남편은 짐짓 사회학자처럼 말했다.

“노르웨이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하는 나라인 거야. 그러니까 술에 의존할 수밖에.” 남편의 해석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노르웨이가 낳은 작가 뭉크와 입센은 둘 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뭉크의 ‘절규’는 백야 현상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한 시간이면 거의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다. 우리는 여행 중 일용할 양식으로 급부상한 알코올은 단 한 방울도 구하지 못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쉽게 숙소를 찾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오슬로에서는 최저가이지만 우리에게는 17만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한 호스텔은 믿을 수 없게도 사면과 천장이 온통 빨간색으로 덧칠돼 있었다. 마치 병동의 침대를 훔쳐 갖다 놓은 듯 으스스한 분위기는 섬뜩했다.

하필이면 비명을 지르는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그림이 침대 위에 붙어 있었다! 평상시에도 어쩌다 그 그림을 보면 뒷목이 섬뜩해지곤 했는데 아무리 양복을 입은 직장인의 모습으로 패러디했다지만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노르웨이 직장인의 절규 아래서 하는 수 없이 두 손을 꼭 잡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해가 밝으면 저 따위 그림은 무섭기는커녕 웃기기나 할 걸, 그렇게 위로하면서.

청소년 책을 만들었던 남편은 내게 노르웨이가 1인당 작가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아동문학에 있어 독보적인 나라라는 사실을 귀띔해주곤 했다. 춥고 조용한 나라 스웨덴 사람들이 정갈한 자신의 집에서 디자인에 열중하는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북극해 근자에 위치한 노르웨이 사람들은 고독한 자기 방에서 낮밤을 분간하지 않은 채 글을 쓰는 것일까?

우리는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에게서 베르겐에 있는 피오르(fjord)를 추천 받았다. 피오르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슬아슬한 협곡을 자랑하는 곳이다. 여행 전에 가이드북을 통해 그 명성을 확인했지만 그곳을 가기 위해선 대대적인 일정 수정이 불가피했다. 노르웨이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나가는 저가항공을 공짜에 일찌감치 예약해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피오르냐 저가항공이냐, 우리는 고민 끝에 더블린으로 떠나기로 했다. 숙소에서 만난 스물다섯의 방랑색 짙은 한국인 청년은 “노르웨이에 와서 피오르도 못 보고, 그게 뭡니까?”라며 되바라진 충고를 건넸지만 우리에게도 나름 사정은 있었다.

오슬로에서 어쩔 수 없이 타게 된 택시 요금은 5분에 2만3000원. 코펜하겐이 이상적인 도시라는 것도, 스웨덴이 배울 점이 많다는 것도, 노르웨이가 거대한 자연의 나라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북유럽은 우리에게 너무 벅찼다. 우리는 내심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던 거다.

오슬로 공항으로 가는 사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노르웨이의 대자연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생긴 나는 얄궂게도 계속 남편의 속을 뒤집었다. “숲이 이 정도면 피오르는 정말 죽이겠지?” 남편은 귀를 막았다. 그러고도 내가 한마디 더 하자 남편이 내 주둥아리를 잡아 꼬집었다.

부부 is 내가 꼬부랑 늙은이가 돼도 여전히 나를 ‘귀엽게’ 보아줄 사람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 셋, 서른 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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