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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붓 가는대로… 한국화<韓國畵>가 재미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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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다. 조상들의 소박한 일상을 그린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는 화려하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지만 뭔가 끌리는 것이 있다. 서울 사대부설 초등학교 방과 후 한국화 교실의 어린이 화가들이 한국화의 매력을 알려줬다.

화선지의 번지는 특성과 붓의 농담을 알면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어

“여러분, 동양화의 매력이 뭐에요?”
기자의 질문에 아이들은 “동양화는 틀린 말이에요! 한국화가 맞아요”라고 입을 모은다. 배유정(9)양은 “동양화라는 말은 일제시대 때 일본이 한국화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만들어 낸 말이기 때문에 한국화라고 불러야 돼요”라고 야무지게 설명했다. 화선지에 검은 선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김정훈(9)군에게 왜 줄을 긋고 있냐고 물었더니 “선긋기는 한국화 그리기의 기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선긋기 연습을 통해 먹의 농담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면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 김군은 처음에는 까만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한국화가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물감보다 먹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단다.
공경미(32)교사는 “서양화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그림이라면 한국화는 본질을 그리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수채화는 원근법을 지켜 정확한 표현을 해야 하지만 한국화는 다르다. 그는 김홍도의 ‘씨름’을 예로 들었다.“단원은 앞사람은 진하게, 뒷사람은 흐리게 그리다가 제일 뒤에 있는 사람은 또다시 진하게 그렸어요. 원근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림 속에 모든 사람들을 골고루 표현하기 위해서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솔
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년에 세계미술대회에서 은상을 받은 이원영(12)군은 “한국화는 그리고 싶은대로 그릴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는 것. 이로운(12)군도 “한국화는 깊은 맛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전통재료와 도구에 대해 이해하면 한국화는 어렵지 않다. 공 교사는 “화선지의 번지는 특성과 붓의 농담을 알면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다”며 “붓은 물감을 종이에 옮기는 도구가 아니라 자체의 흔적이 하나의 표현이 된다”고 강조했다. 5년째 한국화를 그린다는 한승훈(12)군은 “한국화는 붓끝의 미세한 변화에 의해 그림이 확 달라진다”며 “종이 위에서 장난처럼 붓놀림을 할 때나 손끝에서 붓이 감겨드는 것이 느껴질 때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한국화는 다채로운 색 표현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오산. 공 교사는 “빨강 노랑 파랑 3원색과 먹만 있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깔을 만들 수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는 노랑과 파랑을 섞으면 초록이 된다고 흔히 알고 있다. 하지만 노란색이 많이 섞이면 연두색, 파란색이 많으면 남색이 된다. 그는 “색깔을 섞는 연습을 통해 색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화는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어떤 도움이 될까? 공 교사는 “한국화를 그리면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의력과 관찰력까지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항상 질문을 던져요. 꽃을 그릴 때는 어
떤 꽃이 제일 크게 보이는지, 가장 진하게 보이는 잎은 어떤 것인지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거든요.” 사물을 자세히 보는 습관을 들이면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갖게 된다. 사대부설 초등학교는 한국교원대 김충식 교수가 제의, 2001년부터 방과 후 한국화 교실을 운영해오고 있다.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3번, 각 1시간씩 수업하며 매년 가을 혜화역에서 작품 전시회도 개최한다.

프리미엄 송보명 기자
사진_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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