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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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접은 추신을 다시 펴 읽었다.
…한 여인을 사모했었습니다.소년때 일이었습니다만 그 강렬한 인상은 지금껏 의식 밑바닥에 묻혀 있습니다.오래 전에 돌아간 그 분이 요즘 살아나온 것같은 착각을 이따금 느낍니다.망언을 용서하십시오.핫하하….
웃음에 얼버무린 쪽지는 분명히.사연'을 말하고 있었다.
소년때 사모한 여인이 있었다 한다..소녀'라 하지 않고 굳이.여인'이라 한 것을 보면 연상(年上)의 애인이었는지 모른다.
짝사랑이었을 수도 있다..오래 전에 돌아간 그 분이 요즘 살아나온 것같은 착각'이란 뭘 말하는 것인가.그 여인 과 을희를 이중사(二重寫)하는 까닭은,을희가 단순히 그녀처럼 연상이라는 뜻만은 아닐 것인데….
.망언을 용서하십시오'란 덧붙임이 오히려 이 글발의 심상치않음을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부담스런 보따리가 갑작스레 당도한 느낌으로 당황했다.
나상록(羅常綠).
샤머니즘을 쫓다 한.일 비교고대언어학을 연구하게 된 재야(在野)학자.
나이는 40대 후반 아니면 50대 초입으로 큰아들보다 약간 손위의 독신자.뒤늦게 결혼하여 쌍둥이 아들을 보았는데,어찌된 영문인지 이혼하여 어머니.아들과 함께 제주 서귀포에서 민박을 치며 살고 있다.
가무스레하나 반듯한 얼굴 생김새랑 걸쭉하나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소박하고 염담(恬淡)하나 매우 지성적인 인상을 풍긴다.그 두가지 반대개념이 서로 부딪쳐 이따금 섹시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제주도 바닷바람에 다져진 탓인지 몸매도 건장하다.
여성들 사이에서 어지간히 인기있을 듯 싶은데 결혼이고 사랑이고 인간의 속사와는 담쌓고 살아온 남자.
그가 보내온.사랑의 고백'을 닮은 쪽지 앞에서 을희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출판사를 시작하며 많은 남성과 함께 일을 했다.태반은 손아래남성들이었다.그중 또 태반은 을희를 몹시 따랐다..어머니겸 누나겸 애인'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무애무득한 그 감정이 싫지만은 않아서 적당히 받자하여 살다가구실장과 같은 사건도 겪었지만,그야말로 인생의 황혼기에 사랑을호소하는 남자를 또 만나다니….
소서노여대왕과 동명성왕 주몽의 나이 차이는 일곱살,열두살,스물두살등 구구설이 있으나 그녀가 연상이라는데 이견은 없다.연하의 남자로부터 흠모받는 여인의 특성은 무엇인가.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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