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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어린이책] 주근깨투성이 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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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버지 윌슨 지음, 나선숙 옮김, 세종서적, 550쪽
1만30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빨강머리 앤’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캐나다 정부와 ‘루시 몽고메리 협회’가 공식 기념판으로 펴낸 책이다. 『빨강머리 앤』 의 전편(前編)격으로, 앤이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있는 매슈· 마릴라 남매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재구성했다. 주근깨투성이에 빼빼 마른 빨강머리 소녀 앤. 낭만파에 공상가, 수다쟁이인 앤은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쾌활하고 희망찬 에너지를 불어넣는 마력을 가졌다. 어떻게 자랐기에 그토록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될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이 이 책의 출발이다.

이 책의 기본 줄거리는 루시 몽고메리가 1908년 펴낸 책 『빨강머리 앤』 앞 부분에서 앤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앤은 매슈·마릴라 남매가 원했던 남자 아이가 아니어서 고아원으로 되돌아가야 할 처지가 됐다. 자신을 데리고 온 스펜서 아주머니 집으로 마릴라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네가 상상한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그냥 사실대로만 얘기해 봐라. 처음부터 말이야. 어디서 태어났고, 지금 몇 살이지?”란 마릴라의 질문에 앤은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는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부모님, 아주 작은 노란 집, 빼빼 마르고 작아서 눈밖에 보이지 않았던 아기 앤, 그래도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다던 엄마…. 열병으로 부모님을 잃은 뒤 앤은 토머스 아주머니 집과 해먼드 부인 집에서 어린 아기들을 돌보며 살았다. 그런 더부살이 생활도 계속되지 못한다. 갑작스럽게 해먼드 아저씨가 숨을 거두면서 해먼드 부인은 아이들을 친척들에게 나눠 맡기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열한 살이나 된 앤을 맡으려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고아원으로 간 앤. 그곳에서 넉 달을 살다 프린스에드워드 섬 에이번리 마을의 초록 지붕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골격만 앙상한 앤의 어린시절 이야기에 살을 붙인 작가는 『빨강머리 앤』의 배경이 된 캐나다에서 현재 가장 명망 높다고 꼽히는 버지 윌슨이다. 원작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는 부담을 감수하고 선뜻 앤의 유년시절 복구에 나서준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

『빨강머리 앤』의 내용과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지는 에피소드를 찾아보는 재미도 크다. 앤의 이름을 지으며 엄마 버사 셜리는 말했다. “내가 우리 아이를 보면서 차례로 이름을 불러봤지만 어울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앤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에요. A-N-N이 아니에요. e가 붙은 앤. 이 아이는 우리의 완벽한 앤이에요.”

훗날 앤도 마릴라를 처음 만났을 때 “꼭 뒤에 e를 발음해서 불러주세요.”라고 당부한다.

단짝 다이애나의 동생 미니 메이가 후두염에 걸렸을 때 앤이 보여준 활약상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앤이 헨더슨 선생님으로부터 후두염 응급처치법을 배우고 이를 토머스 아주머니의 아들 노아가 아팠을 때 써먹는 장면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터다.

객관적으로 앤의 어린 시절은 쭉 불행했다. 사실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 앤의 불행이 끝나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 암울한 현실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앤의 매력은 빛이 난다. 이야기 상대 한 명 없는 상황에서도 책장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친구 삼아 마음을 터놓으며 삶의 위안을 얻었던 앤이다. 가슴이 뭉클하고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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