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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전보다 더 험한 ‘11월 입법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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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파도가 밀려오듯, 하나가 끝나고 나면 안도할 틈 없이 또 (파도가) 넘어온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30일 의원총회에서 한 말이다. 실제 그렇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이젠 법안과 예산이 남았다. 특히 11월은 입법을 위한 달이다. 172석의 한나라당은 합의가 안 되면 표결 처리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민주당은 그렇다면 온몸으로 저지할 수밖에 없다고 예고하고 있다.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야 모두 “입법 전쟁”을 말하고 있다.

◆‘정상화’ 대 ‘과거 회귀’=한나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의총을 거쳐 정기국회에서 논의할 주요 법안 131개를 추렸다. 정부 입법이 77개, 의원입법이 54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처럼 해묵은 과제부터 금산 분리 완화와 감세 등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법안, ‘떼법 방지법’ 등 보수 성향 법안까지 망라됐다.

박희태 대표는 “솔직히 전 정권 10년 동안 우리 경제의 활력을 죽이고 투자 활성화를 저해하는 많은 법률·제도들이 나왔다”며 “국내 햇볕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의 ‘10년 적폐론’과 같은 맥락이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언론 등 전 분야에 걸친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여권에선 이런 걸 ‘정상화’라 표현한다. 하지만 민주당에는 ‘과거로의 회귀’다. “재벌과 특권층에 특혜를, 중산층과 서민에겐 부담만 떠넘기는 시도에 불과하다”(서갑원 원내 수석부대표)란 시각도 있다. 특히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막는다며 ‘떼법 방지법’ ‘사이버 명예훼손죄’ 도입 시도 등을 대표적인 ‘반민주적’ 입법 시도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금산 분리 완화도 미국발 금융위기란 현실에 맞춰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언론 관계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접근을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로 단정지은 지 오래다.

◆보수 대 진보의 대선 프레임=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건 사실상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이번엔 더욱이 10년 만에 입법 주도권을 보수 진영이 잡았다. 긴장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은 게다가 대선 패배를 털어내며 결집하고 있기도 하다.

여권에선 그래서 “어쩌면 대선 때보다 더 험한 싸움을 치르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 진영 전체를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실제 상당수 민주당 의원이 근래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민생민주 국민회의’ 준비위의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타산지석 되나=이전의 과반 여당은 2004년의 열린우리당이었다(299석 중 152석). 1990년대 이후 총선에 의한 첫 과반 정당이었다. 열린우리당은 그해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과거사법·신문관계법·사립학교법 등을 밀어붙였다. 이념적 개혁입법을 하는 게 ‘총선 민의’라고 봤다.

그해 말까지 국회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예산안도 법정 시한(12월 9일)을 한참 넘긴 세밑에나 처리됐다. 한나라당에선 “경제위기의 어려움 때문에 우리의 개혁 법안도 이념 법안으로 공격받을 수 있는 만큼 정교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고정애·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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