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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주인 없어 공기업식 경영 … 경영진도 노조도 “좋은 게 좋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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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00% 정답인 제도는 없다. 누가 주인이냐를 정하는 은행의 지배구조도 그렇다. 지금처럼 확실한 주인이 없는 채로 놔두자니 은행이 크지 못하고, 기업에 맡기자니 사금고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말이 많다.

은행 경영진은 어떤 의견일까. 정부 눈치를 보느라 공개적으로 말하진 못하지만 대체로 기업의 은행 소유에 부정적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의 자본금이 늘어나는 건 바람직하지만 굳이 산업자본이 은행에 손을 뻗쳐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럼 이들이 원하는 지배구조는 무엇일까. 따로 대안이 있는 건 아니다. 현상유지를 바란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은 산업자본의 지분이 높아지면 기존의 지배구조가 흐트러진다고 우려해 왔다”고 말했다. 기존의 구조란 ‘확실한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전문경영인이 주인처럼, 그것도 오랫동안 재임할 수 있는 구조’를 뜻한다. 그러나 박찬희(경영학) 중앙대 교수는 “확실한 주인이 없을 땐 엉뚱한 세력이 주인 행세를 하게 마련”이라며 “특히 공공성을 지닌 은행은 정치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도 주인 없는 구조를 즐기고 있다. 임금협상 때마다 일하는 시간은 줄이고 임금은 높이겠다고 주장한다. 최근 4년간 삼성전자 평균 연봉은 22.9% 올라 6020만원이었으나 국민은행은 57.9% 올라 7230만원을 기록했다. 허약한 경영진은 노조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현재 우리금융지주·외환은행처럼 정부나 외국 자본이 대주주인 곳을 제외하곤 시중은행 가운데 뚜렷한 주인이 있는 곳은 없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지분 5% 이상의 주주는 안젤리카 인베스트먼트(9.62%)를 비롯해 세 곳 모두 외국계 투자펀드다. 신한금융지주의 지분율 5% 이상 주주는 프랑스의 BNP파리바(8.5%)뿐이다. 또 국민은행의 최대주주는 올 2월 유로-퍼시픽 그로스 펀드에서 국민연금으로 바뀌더니, 23일엔 네덜란드의 ING은행(5.06%)으로 대체됐다.


최대주주의 지분이 한 자릿수이면 ‘이 은행의 주인은 누구’라고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 전문경영인은 우호적 주주들의 지지를 얻어 경영해야 한다. 주주의 지지는 실적이 있어야 확보할 수 있다. 실적은 곧 배당이다.

은행들이 배당금을 크게 늘린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국민은행은 2005년 이후 3년간 2조2368억원을 배당했다. 순이익(7조4981억원)의 29.8%에 이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순이익(22조9522억원)의 12.3%(2조8256억원)를 배당했다. 또 이 기간 중 신한금융지주는 1조3977억원, 하나금융지주는 4743억원을 각각 배당했다. 신학용(민주당) 의원은 “최근 5년 간 7개 시중은행이 외국인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4조8665억원”이라며 “금융위기로 정부 보증까지 받는 은행이 지나치게 배당을 많이 하는 것은 공공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좋게 말해 ‘주주 경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으로 고배당이 어려워지면 잠복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란 시각이 많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성장이 꺾인 뒤 주요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은행 내 알력이 표면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행장의 연임이나 지주회사 설립 과정에서 알력이 빚어진 사례도 있다. 주인이 없으면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요 안건은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결정되지만 전략적 결정이나 임원 인사는 사실상 최고경영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단기 성과 평가도 은행의 지배구조와 관계가 있다. 살아남으려면 실적이 좋아야 하니, 내실보다는 너도나도 외형 경쟁에 나선다.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1년 전의 외형 경쟁이 경영에 부담을 준다. 반대 경우도 있다. 어느 부행장은 지난해 카드사업의 구조조정을 하느라 외형이 부실해지자 올해 초 옷을 벗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올 들어 카드 부실이 가벼워져 큰 짐을 덜었다. 은행에 좋은 일을 하고도 불이익을 당한 경우다.

단기 평가는 조직의 군기를 잡는 데도 유용한 수단이다. 간부들은 자리 보전을 위해 당장의 실적에 목을 맨다. 자연히 평가권을 쥔 행장이나 지주회사 회장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한 금융 컨설턴트는 “단기로만 평가할 경우 자칫 최고 평가권자의 독단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남윤호·김준현·안혜리·김원배·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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