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佛.월면佛로 살아온'우리시대의 원효'입적한 이기영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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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 불교학계의 법당(法堂)하나가 쓰러졌다.유발승(有髮僧) 이기영(李箕永) 한국불교연구원 이사장의 원적(圓寂)을 우선 이한마디로 「축하」해 본다.
기왕에 벗어버려야 할 육신의 옷이라면 낙엽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이 조락(凋落)의 계절이 훨씬 어울린다.쓰러져야 할 육신의 법당을 미련스럽게 떠받치고자 할 필요는 없다.그래서 감히 흔히 쓰는 「애도」란 말 대신에 「축하」라고 했다.
술자리에서 햇살처럼 퍼지던 그의 너털웃음은 마치 해님모양의 얼굴을 한 부처(日面佛)였다.또 평소의 담소 때는 꽉찬 보름달같은 미소를 늘 머금은 달모양 얼굴의 부처(月面佛)였다.
저 옛날 마조선사는 죽음에 임해 『일면불 월면불』을 되뇌면서세속을 살고가는 수명의 장단을 초월했다 한다.그러나 李박사는 생전의 술자리.잠자리에서 일면불과 월면불을 살았다.
그는 외국유학이 오늘날과 달리 「하늘의 별따기」였던 60년 로마 우르바노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유럽신학의 명문 루뱅대에유학했다.
그의 유학은 황해도 고향 선배인 당시 천주교 서울교구장 노기남대주교가 주선했다.그때 그의 신앙은 개신교에서 개종한 가톨릭이었다. 루뱅대 철학박사 학위논문은 가톨릭의 고해와 불교의 참회를 비교연구한 『참회에 대하여』였다.이때 심오한 불교철학에 매료돼 유학을 끝내고 동국대 불교대 교수.학장 등을 역임하면서30여권의 불교연구서적을 저술했다.연구의 백미는 「원효 사상연구」다.그는 필생의 업적인 이 연구에서 우주통합의 원리인 원효의 화쟁(和諍)사상과 성(聖).속(俗),정(淨).예(穢)등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단호히 거부했다.아마도 이때 그는 생(生)과사(死)라는 세속적인 사량분별 따위를 시궁 창에 내팽개쳤으리라. 원효를 연구한 李박사가 아닌가.이제 그는 저 조용한 곳으로들어가고자 입적(入寂)했다.본래가 태고의 정적과 심산유곡은 「속물비판」의 왕성한 에너지원이다.세속에 못다 회향(回向)하고 간 李박사의 원력이 유곡(幽谷)에서 더욱 힘을 내 살활자재(殺活自在)한 속물비판의 취모검(吹毛劍)을 휘두르길 바랄 뿐이다.
〈이은윤 종교전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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