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믹스>경쟁력의 '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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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 MIT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 시대 경제학계의 「무서운 아이」다.고정관념이나 통념들을 무시로 뒤엎는다.코페르니쿠스적 경지까진 못갔지만 어떻든 그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뚱단지같은」이론이나 분석으로 경제학계 에 「입방아거리」를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이다.동아시아국가들의 「경제적 기적」에 대한 예찬이 한창이던 94년11월 포린 어페어스에 그가쓴 논문 한편이 찬물을 끼얹었다.
동아시아의 기적은 『물적.인적자원을 일정기간 국가주도로 몽땅경제개발에 쏟아부은 결과다.투입에 의한 성장이지 효율에 의한 성장은 아니었다』고 그는 꼬집었다.
성장을 위해 투입을 늘리는데는 한계가 있다.또 투입량과 산출량간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성장은 앞으로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감히예언했다.젖먹은 힘까지 동원해 비행기를 이륙(take-off)시킬 수 있지만 「털털거리는 엔진」으로는 지속적 고공비행은 불가능하다는 예단이었다.
경제발전단계에서 「도약」이론의 대가이자 원로인 월터 로스토(텍사스대)교수가 「격노」하고,95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경제전문가 회의는 영락없는 「크루그먼 성토장」이었다.
크루그먼은 투입된 자본과 노동의 증가분에 총효율을 합친 것을경제성장률로 본다.이 총효율을 그는 「총요소생산성」(TFP:Total Factor Productivity)으로 부른다.남들이 잠잘 때 안자고,남들이 놀 때 안놀고,남들이 쓸 때 안쓰면성장률은 어느 단계까지 계속 높일 수 있다.이는 투입위주 성장이다. 중요한 것은 「플러스 알파」,즉 사회적 총효율이다.지금까지 한국의 성장 역시 이 투입위주 성장이었다.
지난해 크루그먼은 한국이 현상태의 사회적 효율로 미국 수준에도달하려면 『국민 한사람당 박사학위 2개에다 50만달러상당의 장비들을 갖춰야한다』고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크루그먼의 카산드라적 예언은 바로 2년후 우리의 현실로 다가 왔다.
TFP는 한나라 경제의 총체적 효율이다.이를 계량화하는 일은어렵고,또 이를 끌어올리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경쟁적 환경을 만들고 비효율과 낭비.부정을 없애고 권한분산으로 자발적 창의를 북돋우는 사회 전반의 자기혁신이 출발점이다.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는 고비용 저효율은 곧「크루그먼의 덫」이다. 경쟁력은 세계시장에서 경쟁자에 비해 보다 많은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위 또는 열위라는 말을 붙여 사용하는 상대적 개념이다.「10% 비용절감」「생산성 10%향상」이면 몰라도 「경쟁력 10%향상」은 표현부터가 적절치 못하다.
더구나 「위에서 아래로」의 바람몰이식 드라이브는 또다른 왜곡을 불러오기 십상이다.밑으로부터의 소리없는 효율화혁명이 제격이다. 투입위주 성장단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두드러진다.그러나 효율화 성장단계에서 정부는 자산이라기보다 짐일 경우가 더 많다.
우리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사회 전반의 구조적 부패와 직결돼있다. 비리와 사정(司正)의 거듭된 숨바꼭질로 음으로 양으로 경제를 멍들이고 있는 우리 정부의 효율부터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때다. (경제담당국장) 병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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