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톰슨'인수와 프랑스 자존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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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우(大宇)의 톰슨멀티미디어 인수가 프랑스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정부는 지난 16일 톰슨그룹을 라가르데르 그룹에 양도키로 하는 한편 대우가 톰슨의 가전부문 자회사인 톰슨멀티미디어를인수하도록 승인했다.인수조건은 1백40억프랑(2조2천4백억원)의 누적 부채를 떠맡는 대신 상징적으로 단 1프 랑(1백60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는 또 프랑스에 75억프랑(1조2천억원)의 투자와 5천명의 일자리를 약속했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대우의 톰슨 인수는 앞으로 프랑스의 민영화위원회와 유럽연합(EU) 집행위의 형식적인 승인절차만 남겨놓은 듯했다.
그런데 뒤늦게 반대여론이 비등하면서 대우의 인수가 큰 논란을빚고있다.
르몽드지는 20일 「분노를 야기하는 톰슨 양도」로 문제를 제기한데 이어 21일에도 「사명감을 환기시키는 톰슨 매각」이란 제목으로 국민정서를 자극하고 나섰다.
르몽드는 한 노조간부의 말을 인용,『저가품을 생산하며 기술적으로 개발능력없이 남을 모방하는 대우』라며 대우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렸다.
또 리베라시옹도 「톰슨,한국과의 결혼 거부」를 제목으로 정부결정을 비판했다.경제지인 라트리뷴은 21일 『프랑스의 백마탄 기사가 톰슨 인수를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며 제3자 인수설을 흘리기도 했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프랑스에서 외국기업에 의한 프랑스 기업의 합병.인수는 흔한 일이다.경제논리로 따지면 대우의 톰슨 인수는프랑스 정부가 선택한 최선으로 전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프랑스 언론들이 이렇듯 나선 것은 인수자가 한국회사라는 점때문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한국기업이 여전히 저가품의 다량판매로 시장을 개척한다는,「한국=싸구려」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있다.이번 프랑스 언론의 비난은 그런 한국기업에 세계 4위의 프랑스 가전회사가 넘어간데 대해 자존심이 상한 탓으로 여겨진다.
이런 인식과 부당한 비난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하루빨리가격만이 아닌,품질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고대훈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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