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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돈] 1. 문화의 경쟁력은 '곳간'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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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두만강만 넘어서면 곧장 연결되는 곳. 러시아 동쪽 끝 연해주의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지난 8일 이곳의 밤 하늘엔 한국에서 온 가수 서태지(33)의 가녀리면서도 폭발할 듯한 노래가 길게 울려 퍼졌다. 서태지의 첫 해외 공연장으로 선택된 디나모 스타디움은 오후 7시45분(현지시간)부터 3시간 동안 1만5000명의 관객이 토해내는 환호성으로 진동했다. 이 공연은 한.러 수교 120주년과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KT&G(옛 담배인삼공사)의 후원으로 기획됐다.

이처럼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메세나)활동이 최근 크게 늘었다. 9일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회장 박성용)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쓴 돈은 1517억원으로 전년도의 720억원보다 111%나 증가했다. 1995년 이래 최고치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993억원으로 최고였고, 다음이 LG(112억원)-SK-금호아시아나-교보 순이다.

그렇다고 문화계가 외부 손길만 기다리지는 않는다. 여러 분야가 자생력을 갖췄다. 관객 1000만 시대를 연 '실미도'는 다음달 5일 일본 전역에 걸쳐 250여개 극장에 걸린다. 한국영화를 이처럼 많은 극장에서 개봉하기는 처음이다. 제작사인 시네마서비스는 '시네마서비스 재팬'이라는 현지 법인을 설립해 시장개척에 팔을 걷었다.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맘마미아'는 100억원을 투자해 4개월 만에 30억원의 수익을 남겼다. 또 출판사 랜덤하우스중앙은 최근 번역서인 '선물'(스펜서 존슨 지음)을 어린이용으로 만들어 전 세계 판권을 갖는 데 저자와 의견 접근을 보이고 있다.

세계가 좁은 듯 한국 문화가 요동치는 한편에는 그늘도 있다. 화려한 수입산(産)에 비하면 창작 뮤지컬은 걸음마 수준이고, '단군 이래 최악'이라고 한숨 짓는 출판인도 많다.

그래도 문화산업은 덩치가 커지고 있다. 또 인재도 몰린다. 이제 막 가속도가 붙은 문화의 피는 결국 돈이다. 돈에서 콘텐츠가 나오고, 콘텐츠는 다시 돈을 만든다. 지금 한국 문화의 피는 어떻게 돌고 있는가. 5회에 걸쳐 실태를 연재한다.

이영기 기자, 블라디보스토크=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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