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책읽기Review] 싸구려 중국산 당신도 공범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차이나 프라이스』

알렉산드라 하니 지음, 이경식 옮김
황소자리, 408쪽, 2만원

 #1. 중국 광둥성 남쪽에 있는 순더의 한 공장. 직원 3만명이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전자레인지의 절반 가량을 만들어낸다. 또 저장성의 다탕에서는 한 해에 양말 60억 켤레를 쏟아내고 있다. 저장성 셍주의 1000여개 공장에서는 각국에서 판매되는 넥타이의 40%를 생산한다. 광둥성에 있는 도시 둥관은 컴퓨터 부품의 최대 조립기지다. IBM의 한 간부는 “둥관과 홍콩 사이에 교통체증이 생기면 전세계 컴퓨터 시장의 70%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2. 지난해 초 미국에서 이유도 없이 애완동물들이 죽어나갔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중국산 사료에 화재 방지용 제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 멜라민이 첨가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리콜사태가 벌어졌지만, 이미 조류와 돼지 수백만 마리가 오염된 사료를 먹은 뒤였다. 그해 여름 파나마에서는 100여명이 감기약을 먹고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감기약 속에는 중국에서 글리세린으로 속여 판 유독성 화학물질 디에틸렌글리콜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전세계 보건당국은 소비자들에게 중국에서 만든 치약에 디에틸렌글리콜 성분이 들어있으니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광범위한 위력과 공포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중국산 제품은 싼값을 무기로 전 세계 시장과 식탁을 점령했다. 덕분에 한때는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휴대폰이나 DVD 플레이어, 평면 TV 등이 일상용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도 짙다. 올 가을 터진 멜라민 분유 파동에서 보듯, 중국산 제품의 피해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어다니며 확산된다.

『차이나 프라이스』는 중국산 제품의 싼 가격이 실은 얼마나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중국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중국 경제 발전의 빛과 그림자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중국 가격’의 진실을 파헤쳤다.

‘세계 최대 수출국’이라는 중국의 화려한 면면 뒤에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과 극심한 환경오염 등이 숨어있다. 중국 노동자의 인권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최저가 전략을 고수하는 서구 유통업체, 노조가 들어선 공장을 거래 대상에서 제외하는 유명 브랜드 업체, 납품업체들을 대상으로 무한 가격경쟁을 부추기는 다국적 기업들도 ‘중국 가격’의 그림자에 일조했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 덕에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2002년 중국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은 시간당 평균 0.57달러였다. 이는 선진국 생산직 노동자 임금의 3% 정도에 지나지 않는 액수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2년의 노동자 최저 임금이 시간당 2100원(당시 환율로 1.6달러)였다. 임금만 낮은 것이 아니다. 중국의 노동자들은 ‘최저가 생존 원칙’에 따라 직업병과 안전사고에 대한 보호장치 없이 생산 현장에 내몰렸다. 전세계 석탄의 35%를 생산하는 중국에서 전세계 탄광 사망자의 80%가 나왔다는 통계는 그래서 나왔다.

편법과 탈법도 판을 친다. 월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중국의 한 회사에는 두 종류의 공장이 있다. 최저 임금과 최대 노동시간 등을 규정한 월마트의 윤리규칙을 지키는 ‘오성(五星) 공장’은 월마트 본사의 감사에 대비한 모델 공장이다. 실제 생산은 ‘그림자 공장’ 혹은 ‘검은 공장’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오성 공장’ 노동자들이 하루 8∼10시간 주 6일 일하는 동안 ‘그림자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1∼12시간씩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저자는 중국의 미래를 위해 “중국처럼 가야 할 길이 먼 나라는 경제성장률을 희생해서라도 법치를 확립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가치사슬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보다 좋은 규제 체계를 갖춘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돈을 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예를 들어 파운드당 가격이 10센트인 곡물보다는 10달러인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것이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이 표고버섯에 유독한 물질이 전혀 없다는 보증 없이는 아무도 10달러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중국 정부가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논쟁을 단속하는 것처럼 공장을 단속하는 데도 힘을 쏟는다면 제조업 기반의 기준이 몰라보게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중국에서 판금 조치를 당했다고 한다.

저자의 마지막 메시지는 전세계 소비자들을 향한 일침이다. 전세계 누구도 중국산 제품에서 자유롭지 못하듯, ‘중국 가격’의 공범 자리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가 30달러짜리 DVD 플레이어와 3달러짜리 티셔츠를 원하는 한 중국의 보석공장에는 여전히 먼지가 가득 차 있을 것이고, 불법 탄광은 계속 생겨날 것이고, 열여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노동자가 자정이 넘도록 공장에서 일할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중국 가격의 당사자들이다.”(377쪽)

이지영 기자

▒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섹션 '레인보우'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