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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의 경제세상] 부자 돈은 좀 뺏어도 된다는 로빈후드 심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호 02면

‘천려일득(愚者千慮 必有一得)’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한나라가 천하통일을 코앞에 뒀을 때 조나라의 패장 이좌거가 한 말로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 해도 천 가지 생각 중에 득책(得策) 한 가지는 있다는 얘기다. 마치 이명박 정부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하는 짓이 영 마뜩찮은데 모처럼 좋은 계책을 내놓은 것 같아서다.

이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개정과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자 도처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는 ‘천려일실(賢者千慮 必有一失)’의 실책이 아니라 득책이다. 과세 대상 기준을 6억원으로 해야 한다느니, 9억원이 맞다느니 하지만 사실 종부세는 그런 논란 자체가 부질없는 세금이다. 태어나선 안 될 세금이고, 개정은커녕 폐지돼야 할 세금이다.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라 해도 국민에게서 세금을 받으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 나라의 보살핌으로 돈을 벌었다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데, 소득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방정부가 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역시 세금을 내는 게 마땅한데, 재산세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종부세는 이런 정부 서비스와는 관계없이 오직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목적으로 태어난 세금이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자 이걸 막으려고 만들었다는 건 당시 대통령이 한 얘기니 더 이상 사족을 달 필요도 없겠다. 부자 동네의 돈을 빼앗아 낙후된 지역에 쓰겠다는 균형발전의 목적, 부자들은 돈이 많으니 좀 빼앗아도 된다는 로빈후드적 심사도 작용했다.

실제로 강남에서 거둬들인 돈을 비강남·비서울 지역에 쓰고 있다. 이렇게 하면 강남 부자들이 종부세 폐지를 들고 나와도 지방 서민이 거세게 반발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정치적 속셈도 있었다. 하긴 그 때문에 완화될 가능성이 작으니 지난 정부의 술수 하나는 대단하다고 해야겠다.

물론 1~2% 특권층 가운데 자유만 누리고 사회적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게다. 이 때문에 공동체가 와해되므로 특권을 제어해야 한다거나 한국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쉽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차원에서 풀어야지 정부가 조세권을 동원해 강제하는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 무리한 세금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부자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니 좋지 않으냐고 주장하는 것도 곤란하다.

로빈후드가 의적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래도 도적은 도적일 뿐이다. 무엇보다 세금은 내는 사람들이 나라에 뺏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선 안 된다. 동서고금의 민란 역사는 정부의 가렴주구가 원인이었다. 그건 서민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부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몇 년 전 폐지된 종합토지세제를 좀 보완해 부활하는 게 한결 낫다고 본다.

그린벨트 문제도 그렇다. 왜 하필이면 지금 그린벨트를 풀어 집을 짓겠다는 것이냐, 주택 미분양이 속출하지 않느냐라는 비판이라면 그런대로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린벨트에 초점을 맞춰 환경을 훼손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환경도 삶의 질의 한 부분이다. 잘살자고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지 그 역은 옳지 않다면 무엇이 삶의 질을 더 향상시키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주택 공급의 한계효용이 그린벨트 보전의 그것보다 더 크다면 한계효용이 큰 쪽으로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건 경제학의 기본 상식이다. 하물며 축사나 비닐하우스 등 진작 마구 개발돼 있는 그린벨트만 일부 풀어 친환경적 아파트를 짓는 것이라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실개천이 흐르고 공원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축사로 뒤덮인 그린벨트 가운데 어느 게 더 친환경적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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