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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곡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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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본선 32강전>
○·구 리 9단(중국)  ●·진시영 3단(한국)

 제10보(119∼133)=예전 바둑이 극렬하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상대방의 묘수’를 경계한 탓이었다. 나는 수를 다 봤지만 그래도 상대에게 무슨 묘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칼을 뽑으려다 도로 집어넣고 ‘길게 가자’고 마음을 돌리곤 했던 것이다. 지금 바둑에 그런 겸손이나 소심은 사라졌다. 바둑판 위의 광풍은 오히려 점점 더 사나워져 간다. 바둑이 또 한 단계 발전하려는 과도기적 현상인지도 모른다.

진시영 3단이 벼랑 끝처럼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칼을 뽑아 귀를 잡아버리자 구리 9단의 눈매도 사나워졌다. 무섭게 수를 보며 결정타를 찾는다. 그러나 중앙 흑이 119로 살짝 벗어나자 수가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안 된다.

‘참고도 1’ 백1로 끊는 것은 흑4까지 수 부족. 그래서 122로 수를 늘려놓고 124 쪽으로 막았는데 이때 진시영의 125가 곡예사 같은 한 수. 귀의 백은 5수, 흑도 5수니까 한 수 빠르지만 ‘참고도 2’처럼 조이는 것은 포위망이 터지고 만다. ‘참고도 3’은 그냥 한 수 부족. 그래서 132뿐이었는데 이번엔 133의 1선 타넘기가 성립했다. 끔찍하고 치열한 수읽기 끝에 진시영은 기어이 귀를 잡는 데 성공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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