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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와함께>"복수와 형벌의 사회사"펴낸 법제硏 전재경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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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충남 아산의 한마을 주민 14명이 11세 소녀를 번갈아가며 성폭행했다.소녀는 고민 끝에 자살을 기도했다.그리고 일기장에 인면수심(人面獸心)을 자행한 이들의 이름을 남겼다.
가녀린 힘으로 자신을 방어할 방도가 없었던 탓이었다.그래서 자살기도라는 극단의 행동으로 자신의 처지를 세상에 알렸다.자해는 「소극적 복수」다.자기 몸을 해치는 행동이지만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결과적 의미에서다.
법제처 산하 한국법제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전재경(全在慶.41)씨의 『복수와 형벌의 사회사』(웅진출판)는 인간사를관통해온 복수와 형벌의 메커니즘을 파헤친 교양서다.
전문서의 냄새를 풍기는 제목과는 달리 동서양 신화.민담.설화.고전.문학.역사.법학.인류학서는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등 풍부한 사례를 들며 복수와 형벌의 기원.구조.형태.기능을 「한여름밤의 무더위를 잊게할 만큼」 흥미롭게 조명한다.
『복수는 필요악입니다.생리적 반사작용처럼 생명체의 본능에 속하지요.』 그러나 全씨는 복수의 단절에 초점을 맞춘다.복수 충동을 자제하고 이를 승화시켜 삶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주장을 펼친다.남의 잘못을 최대한 용서하며 자기발전을 꾀하자고 말한다.
『복수는 복수를 불러 곧 자기패배로 직결됩니다.문제는 갈수록우발적 혹은 설익은 복수가 판친다는 점이에요.과거에는 복수도 이름을 밝히고 정정당당하게 했습니다.』 예컨대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오래한다고 불쑥 칼을 내미는 비겁한 일은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익명사회가 깊어지면서 복수도 그만큼 「비신사적」이 된 것이다.
全씨는 개인의 복수를 법률제도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형벌도 제기능을 못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형벌은 1백년전에 완성된 근대합리주의의 소산입니다.
새술을 담은 낡은 부대라고 할까요.사회는 날로 다원화.다극화로치닫는데 형벌은 과거의 틀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사형.징역.
벌금같은 단조로운 「메뉴」로는 범죄예방.사회정화라는 형벌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자격정지나 박탈같은 명예형을 적극 개발해야 합니다.자격상실은 현대사회에서 곧바로 재산의 손실로 연결됩니다.벌금 몇푼 내더라도 범법(犯法)에서 오는 이익이 크다면 누구나 나쁜 짓을 계속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대안으로 멍석말이처럼 마을의 이름으로 불륜.불의를 징계했던 공동체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내세운다. 『사소한 위반이라도 일일이 통계를 작성,사람들의 수치심을자극해야 합니다.고개를 들고 살기 불편하게 만들자는 뜻이지요.
또 중앙에 집중된 사법권도 과감하게 위임,마을단위의 자치규범을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동국대에서 환경법과 적법절차로 석.
박사학위를 받은 李씨는 경기도 과천의 시민연구모임 대표를 맡아1주일에 두번정도 환경.교통.교육관계 일을 이끌고 있다.
사회의 혜택을 받은 지식인은 당연히 지역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소박한 취지에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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