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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수로(金首露)왕이 세운 금관가야(金官伽倻)는 「삼국지」의「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구야(拘邪) 한국(韓國)으로적혀 있고,8세기에 지어진 일본 고대사 책 「일본서기」에도 고구려.백제.신라는 「삼한(三韓)」이라 표현돼 있지요.고대의 일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가야,즉 가라니까 고대 한국의여러 나라를 「가라」라 부르고 「한(韓)」이란 한자로 표기한 것까진 알겠는데,그것을 전혀 당치도 않은 「당(唐)」이란 한자로 적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 까요?』 작은아들 김사장의 의문을 그의 어머니 서여사가 웃으며 맞았다.
『좋은 질문이야.김사장 말대로 일본서의 「가라(から)는」 원래 「가야」를 가리킨 이름이었는데 그것이 어느새 고대한국 전체를 이르는 낱말이 됐고,또 당나라를 비롯한 고대중국 등 외국을통틀어 가리키는 명칭이 돼 왔어.그래서 한국과의 관련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은 「한(韓)」자 대신 「당(唐)」자를 쓰고 「가라」라 읽어온 거야.일본인들의 「한국 콤플렉스」를나타내는 가장 전형적인 낱말 가운데 하나가 이 「가라(唐)」라는 일본어라 할 수 있어.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외래품의 통칭을 「가라모노(唐物.からもの)라 했었다.「모노(もの)」는 물건이란 뜻이지만 이것도 물건을 가리키는 우리 옛말 「몬」이 일본어로 둔갑한 것이니까 얼마나 많은 우리말이 일본에 갔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 『그렇습니다.「가라모노 아키나이(唐物商.からもの あきない)」라 하면 외국인 상대의 무역을 가리킨 말인데,골동품 매매상 세계에서는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골동품 매매상인 콕 로빈이 반색해서 곁들였다.
『그럼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일본 규슈(九州) 앞바다 「가카라(各羅.かから)」섬의 이름도 「가 가라」「가라로 가는…」이란 뜻으로 지어진 것인지 모르겠군요.』 아버지도 한마디 의견을 보탰다. 『그럴 가능성이 많겠지요? 언젠가 한번 그 섬에 가야겠다고 벼르는 중이에요.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가볼까 하는데….』 서여사에겐 의외로 낭만적인 데가 있다.그것이 그녀를 열살은 더 젊게 보이게 하는지 모르겠다.
만삭인 어머니가 남편 임지(任地)인 왜의 도읍 아스카(飛鳥.
あすか)로 가는 도중 진통을 일으켜 가카라섬 동굴에서 낳은 아기가 백제 무령왕이다.
아리영도 동백꽃과 대리석의 그 섬,그 동굴이 보고 싶었다.
연약하면서도 다부진 것이 여성이다.
동굴에서 훗날의 백제왕을 낳은 이는 대체 어떤 여인이었을까.
불임(不姙)의 동굴을 지닌 아리영에게는 그녀가 영웅처럼 우러러보였다.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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