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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눈썰미 놀라워…마치 여자가 그린 듯”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호 04면

단원(檀園) 김홍도와 혜원(蕙園) 신윤복의 국보 회화들을 브라운관을 통해 감상할 기회가 왔다. 9월 24일부터 SBSTV로 방영될 20부작 드라마 ‘바람의 화원’(장태유 연출, 이은영 극본)은 ‘씨름’ ‘서당’ ‘빨래터’(이상 김홍도), ‘단오풍정’ ‘월하정인’ ‘미인도’(이상 신윤복) 등 주요 작품을 모사화(模寫畵)로 선보인다. 조선조 불세출 두 화가의 예술과 사랑을 그리면서 이들의 작품을 또 다른 ‘주연’으로 등장시키는 것이다. 최근 MBC 드라마 ‘이산’에서 도화서 풍경이 다뤄지긴 했지만 화가의 일생과 함께 주요 작을 내보이긴 이번이 처음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모사화 제작 현장

작품을 재현하는 중책을 짊어진 이는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동양화 전공 이종목 교수.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에서 미술 자문을 맡았던 경험이 있는 이 교수는 제작진의 의뢰를 받고 인물화에 정통한 안국주씨, 정통 견화(絹畵)에 탁월한 백지혜씨, 그리고 둘을 보완해줄 구세진씨를 낙점해 지난 3월 팀을 꾸렸다. 모두 이화여대 출신 동양화가들이다. 연세대 동문 인근 오피스텔 작업실을 찾았을 때 이들은 늦더위를 잊고 원작 임모(臨摸)에 한창이었다.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도 영광이지만, 작업할수록 이들의 눈썰미에 놀라게 돼요.” 안국주 화가는 새삼 단원과 혜원의 매력에 푹 빠진 듯했다. 특히 혜원의 그림에 대해선 “보면 볼수록 여자가 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여자 누드를 예로 들면, 남자와 여자가 그리는 게 전혀 다른 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신윤복은 여자가 아니면 못 잡아낼 디테일까지 절묘하게 살렸어요. 남자였대도 게이 아니면 여자를 정말 잘 아는 남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두 화가의 주요 작을 포함해 20부작 통틀어 쓰일 그림은 60~80점. 병풍·화첩 같은 소품도 프린트·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새로 제작했다. 모사 원칙은 ‘가급적 생생하게, 그러나 원작과 최대한 가깝게’다. 수백 년 된 작품들이지만 그리던 당시를 가정하면 색이 생생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교과서나 전시회에서 본 그림은 빛 바랜 색채이기에 톤을 절충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사본을 일일이 확대기에 쏴서 크기와 비례를 계산한 뒤 옮겼다.

모든 원화가 국보인지라 빌리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슬라이드 필름과 도록을 총동원하고 전시회 때 본 기억을 되살렸다. 드라마에선 그림 그리는 과정이 단계적으로 재현돼야 하기에 밑그림을 포함해 이들이 제작한 세트는 작품 편수의 몇 배가 넘는다. 김홍도의 8폭 대작 ‘군선도’의 경우 초벌부터 완성작까지 5세트를 제작했다고 한다.

네 화가는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의 ‘손 대역’이 되기도 한다. 김홍도·신윤복이 돼 붓을 휘두를 땐 통쾌하지만 카메라는 이들의 붓끝이나 손목을 비출 뿐이다. 대신 배우들도 촬영 전까지 꼼꼼히 수업을 받았다.

백지혜씨는 “붓·먹을 다루는 것뿐 아니라 당시 한국화의 세계를 이해하는 강의를 출연진과 제작진 전원이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들의 바람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것. 이종목 교수는 “현대화·세계화가 가파르지만 우리의 가치 또한 소중하다”며 “이번 기회에 많은 이가 전통 회화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스타 배우 박신양이 김홍도를,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신윤복을 맡아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남장 여자’ 신윤복이라는 설정을 공개한 상태에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될지 원작 소설 『바람의 화원』과 다른 상상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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