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강소국’ 싱가포르 <下> 효과 만점 ICT 활용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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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교실은 물속 세상이다. 크고 작은 물고기가 주위를 스쳐 지나간다. 수초 밑에는 알이 보인다. 손가락을 대자 팝업창이 뜨며 물고기의 생태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필요한 글과 사진은 언제든지 휴대전화로 옮겨 담을 수 있다’.

지난 5~6일 싱가포르 선텍 엑스포장에서 열린 국제교육기술콘퍼런스(iCTLT)에서 소개된 첨단 교실 ‘4Di’의 모습이다. 하지만 ‘상상의 교실’이 아니다. 싱가포르 캔버라 초등학교에 지어지고 있는 시설이다. 전·후·좌·우 4면에 천장·바닥까지, 교실 전체가 스크린으로 돼 있다. 최대 60명까지 동시 입장이 가능한 세계 최대의 쌍방향 영상 시설이다. 영상 내용에 따라 온도와 냄새까지 달라진다.

온실 효과를 배울 땐 기온이 올라가 빙하가 녹는 과정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연말께 공사가 끝나면 내년 신학기부터 이용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교육부의 지원 아래 휴대전화회사 싱텔, 마이크로소프트(MS) 등 5개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세계 최대 ICT 박람회=‘4Di’가 소개된 iCTLT는 싱가포르 교육부와 국제교육기술협회(ISTE)가 공동 주최한 행사다. 세계 37개 업체, 싱가포르 27개 초·중·고, 일본 2개 대학이 부스를 마련했다.

학생 각자가 리모컨을 이용해 문제를 풀고 채점·통계까지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쌍방향 칠판’ 같은 첨단 기자재와 각 학교가 추진 중인 ICT 활용 사례 등이 소개됐다. 세계 20개국에서 찾아온 참가자가 무려 1700여 명.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 MS의 박범주 부장은 “대형 콘퍼런스는 보통 500~600명 수준인데, 이 정도 규모면 교육 관련 콘퍼런스로는 세계 톱 수준”이라고 말했다. 응엥헨 교육부 장관은 개막연설에서 “2014년까지 교육환경을 ICT 중심으로 바꿔 학생들이 지식경제 사회에 필요한 핵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ICT 교육도 선택과 집중=싱가포르의 학생당 컴퓨터 보급률은 초등학교 6.5명당 1대, 중·고 4명당 1대꼴이다. 한국은 초·중·고등학교를 합쳐 5.8명당 1대꼴이다. 평균은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선두 그룹은 사정이 다르다. 싱가포르 교육부는 매년 정보화 선도(LEAD ICT) 학교를 지정해 집중 투자하고 있다.

지원금 액수는 3년에 10만 싱가포르 달러(약 7400만원). 교육부 외에 정보통신개발청(IDA)·국립교육원·기업체 등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많기 때문에 학교당 지원금 규모는 보통 수억원이 넘는다.

컴퓨터 애니메이션과 전자음악 분야 정보화 선도 학교인 라딘마스 초등학교의 리라이용 교장은 “올해 컴퓨터 랩실을 새로 꾸미는 데 몇십만 싱가포르달러(수억원)를 지원받았다”고 자랑했다.

싱가포르엔 이런 학교가 67곳이나 된다. ICT 활용 실적이 특히 탁월한 5곳은 별도로 ‘미래 학교(Future School)’라고 부른다. 이 학교에는 교육부뿐 아니라 IDA와 대기업 컨소시엄이 최첨단 설비와 교육 기자재를 지원한다. ‘4Di’가 지어지고 있는 캔버라 초등학교도 그중 하나다. ‘미래 학교’는 2015년까지 총 15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기술은 수단일 뿐=응엥헨 교육부 장관은 iCTLT 개막 연설에서 “종이에 펜으로 쓸 수 있는 것을 태블릿 PC로 쓰고, 토론 시간을 줄여 파워포인트 발표를 준비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ICT 교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육이 우선이고 정보화는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수업 내 ICT 활용률은 평균 30%대다. “가능한 한 모든 학년, 모든 과목에 ICT를 활용하라”는 것이 교육부의 지침이다. 그래서 싱가포르 초등학교들은 수학시간에 폭탄 투하 오락으로 XY 좌표 개념을 가르친다. 이중언어 교육에는 태블릿 PC를, 음악 수업에는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iCTLT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정성무 교육정보화센터 소장은 “싱가포르에 비해 한국의 ICT 교육은 양적인 개념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컴퓨터 기종이나 인터넷 접속 속도로 정보화 수준을 평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이젠 잘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해 어떻게 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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