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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지붕을 갈대로 인 작고 아늑한 16세기의 집이었다.연초록 대리석 원석으로 깐 마룻바닥이며,돌 오븐이 달린 난로가 있는 안방이며,꽃밭이 내다보이는 둥근 창이며,침실로 올라가는 나선형의두꺼운 나무계단이며….여인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소박한 집.결혼을 하면 이런 집을 꾸며 살고 싶었다.
2층 침실엔 셰익스피어가 잤다는 나무침대가 놓여 있었다.생각보다는 작았다.셰익스피어는 자그마한 몸집의 남자였는가.어떻든 앤 해서웨이의 너그러운 품에 안겨 잔 연하(年下)의 천재 청년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낭만적인 것이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따스한 관용(寬容)의 정신」이다.희극(喜劇)엔 물론 처절한 비극에서까지 너그러움으로 인한 조화가 주장되어 있다.
그것은 연상의 여인 앤이 셰익스피어에게 미친 영향의 하나로 여겨졌다.연상이기에 가능했던 축복이었을 것이다.
여덟살 손위의 여성을 재혼의 상대로 선택한 지난 날의 남편 이소장도 아내에게 이같은 너그러움을 바랐는지 모른다.원래 머더콤플렉스 같은 것을 지니고 있던 남자다.걸맞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섭섭하지는 않으나 어쩐지 씁쓸했다.이렇게 빨리 재혼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가.
북악산 계곡 위의 집 앞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오랜만에 보는 서울의 별밤이었다.
…순금의 작은 접시를 가득히 박은 것같구나.보아라,저 하늘의별 하나하나가 마치 천사처럼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베니스의 상인』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의 한 구절.긴박한 재판이 잘 끝난 다음 연인끼리 나누는 대화에서도 「밤」과「음악」의 조화가 찬양되고 있다.
-이제 남편도,아니 지난 날의 남편도 조화의 밤을 보내게 될테지. 인생 무대의 1막이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후련하면서도 왠지 외로웠다.
이튿날 아침 일찌감치 S호텔에 갔다.제각각인 세사람의 일정을차질없이 짜기 위해 아침 커피를 들며 의논하기로 한 것이다.
이 호텔 특별층은 호사스러우면서도 사무를 보기 편하게 꾸며져있다.객실과 이어지는 같은 층에 작은 레스토랑겸 커피 라운지랑비즈니스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는 것이다.
서둘러 가다보니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라운지한 구석에서 신문을 펴들며 혼자 커피를 마시던 남자가 소스라치듯 일어났다.
『아리안느!』 우변호사 아닌가.그는 신문을 탁자에 던진채 아리영 손목을 잡아끌며 재빨리 복도로 걸어갔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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