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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10대>10.독도는 우리것,하지만 야마하가 더 좋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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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경없는 단일시장에서 자유경쟁을 내세운 적자생존의 논리는 상품과 경제만이 아니라 문화와 정신까지 전분야를 석권해가는 추세다. 이 거센 흐름안에서 우리의 10대들은 정체성의 위기에 부닥쳐 있다.
서울Y고 1년 洪모(16.서울양천구목동)군은 5일 부모님으로부터 한달 용돈 3만원을 받자 곧바로 용산전자랜드 음반판매장으로 달려갔다.洪군이 고른 것은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댄스그룹 「X」의 최신 CD앨범.수입금 지품목이라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3주만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음반을 구했다』는 洪군에게 『왜 하필 일본가수인가.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안드나.정말 노래가 좋은가』라고 묻자 망설임없는 답변 이 돌아왔다.
『일본이란 나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본 노래를 싫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이 독도(獨島)를 자기네땅이라고 우기면 전쟁을 해서라도 지켜야죠.왜냐구요.독도는 원래우리 것이니까요.하지만 그것이 일본 댄스그룹의 CD나 일본만화「북두신권」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되나요.』 서울D중 2년韓모(15.서울 강동구성내동)군의 이 말은 이들의 의식구조를 보여준다.
서울M여중 3년 李모(15.서울관악구신림동)양은 매달 4천원을 주고 일본 패션잡지 『논노』를 산다.『JJ』『VIVI』『유행통신』을 산 친구들과 돌려 보며 다음에 유행할 패션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흰색 미니스커트와 검은 스타킹에 군화같은 워커를 신고 등에는천연색의 색(sack)을 둘러멘 李양은 『일본풍 복장이 눈에 거슬린다면 한복이라도 입어야 하느냐』고 항변한다.
PC통신에서 만난 朴모(16)군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옹졸한 태도 때문에 일본을 싫어하지만 일본 문화나 상품이라도 좋은 것이라면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요즘 10대들의 외국문화에 대한 탐닉은 이전 세대들도 가졌던외제물건 선호 정도와는 차원을 달리한다.오락.패션.음식.기호등생활전반에서 거의 무비판적인 추종.흡수의 양상을 보인다.그리고그 결과는 심각하다.
『아이들을 보며 외모만 한국인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하는 서울K중 교사 권영규(權榮奎.52)씨는 『외제 학용품에대한 선호나 외국인 스타에 대한 열광은 80년대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이는 학생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애착을 가져서라기보다그들이 공유하는 문화가 미국이나 일본과 동화돼 차이가 없어진 결과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요즘 10대들이 외국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에 따른 자신감의 산물이라는 분석도 일부 있다. LG경제연구원 조용수(趙庸秀)책임연구원은 『70년대 이후태어난 세대는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의 결실을 즐기면서 상당한 수준의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됐다』면서 『10대들은 해방이후 외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은 첫세대』 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서울여대 이옥주(李玉周.교육심리학)교수는 지금의10대들은 외국문화를 우리 것으로 소화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10대들이 외국문화를 즐기는 것 자체가 문제될 수는없죠.70,80년대에도 우리는 끊임없는 외국문화의 수용과 체화를 통해 발전해왔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문화의 수입은 제도적인 통제가 거름종이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그러나 90년대들어 상품과 문화의 선별적 수입은 불가능해졌습니다.여기에서 기성세대들은 말로만 세계화를 떠벌렸을 뿐 청소년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못했어요.』 서강대 조옥라(趙玉羅)교수는 지금의 청소년문화를 「부조화.불건강의 문화」로 정의한다.
『원시시대 문화가 현대에 그대로 통용된다면 그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습니다.마찬가지로 한국에 일본문화가 판을 친다면 당연히 한국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죠.』 이화여대 김재은(金在恩.교육심리학)교수는 10대들의 일본화.미국화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편다.
『문화의 상호교류는 필연적이어서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됩니다.문제는 우리의 경쟁력입니다.우리 것의 재창조를 통한 철저한 경쟁력 확보만이 무분별한 외국문화의 유입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한국인으로 키워내는 것은 부모세대의 공동책임이다.문명의 전환기에 국적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상황은 민족소멸의 위기일 수도 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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