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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보다 빛난 투혼 … 그들이 자랑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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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그러나 승자만이 웃을 수 있고, 1등만이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2위, 투혼을 불사른 모든 선수도 마땅히 박수를 받아야 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 못지않게 값진 은메달, 당당한 꼴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승자 독식과 패자의 떼쓰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이들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12일 역도 남자 69㎏급에 출전한 이배영(29·경북개발공사)은 아름다운 꼴찌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인상에서 2위를 기록한 그는 용상 1차 시기에서 184㎏에 도전하다 왼발 경련으로 발목이 꺾인 채 쓰러졌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메달은커녕 정상적인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배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3차 시기에는 바벨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았다. 인상 경기 때 야유를 보냈던 중국 관중도 “자유(힘내라)”를 외치며 이배영을 격려했다. “마지막 올림픽에서 기권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았다. 올림픽에 두 번이나 나갔고 관중의 박수를 받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배영은 진정한 챔피언이었다.


여자 펜싱 플뢰레에서 따낸 남현희(27·서울시청)의 은메달은 금메달보다 값졌다. 악착같은 훈련으로 스피드를 키워 1m54㎝ 단신의 약점을 극복했다. 20여㎝나 키가 큰 유럽 선수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고 끝까지 진땀 승부를 펼친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는 올림픽을 두 번이나 제패한 세계 1위 발렌티나 베찰리(이탈리아)와 팽팽한 접전 끝에 종료 4초를 남기고 통한의 결승점을 허용했다. 아쉬움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밝은 웃음을 되찾고 시상식에서 베찰리에게 축하의 포옹을 건넸다.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 담긴 은메달도 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도 결승까지 오른 왕기춘(20·용인대)의 투혼은 빛났다. 왕기춘은 유도 60㎏급 8강전에서 레안드루 길례이루(브라질)에게 팔꿈치로 가격당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극도의 통증을 참아내고 왕기춘은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아쉽게도 13초 만에 한판으로 지고 말았다. 그는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우리는 2위 시상대에 선 왕기춘을 자랑스러워했다.

유도 81㎏급의 은메달리스트 김재범(23·한국마사회)의 사투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8강전과 준결승에서 연이어 연장 혈전을 치러 체력이 다했던 그는 결승전에서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나 김재범은 결승에서 마지막 힘을 짜내 최선을 다했다. 비록 유효를 허용해 졌지만 그는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베이징=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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