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 투자확대조치 취한 이유-4자회담 성사겨냥'經協당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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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27일 남북경협 확대조치를 취한 1차 이유는 역시 한반도 평화 4자회담이다.경협 확대조치를 통해 북한이 4자회담 테이블로 나올때 얻게될 이익을 분명하게 보여주자는 것이다.「당근 샘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그러나 당장의 4자회담만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북한체제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장기 포석의 측면도 강하다.북한경제는 시장경제 시각에서 보면 이미 파산 상태다.
북한경제는 지난 90년이래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공장 가동률은 이미 20%대로 떨어진지 오래다.북한 최대의 김책제철소도 가동을 중단했다.1백억달러가 넘는 외채를 안고있는 북한은 5월부터 최악의 춘궁기를 겪게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올 남북관계의 최대 이슈는 4자회담과 함께 대북(對北) 쌀지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단순한 경협확대 조치가 아니라 작게는 쌀지원을,그리고 크게는 북한체제의 연착륙을 염두에 둔 정지작업 성격이 짙다.
삼성전자.대우전자.태창 등 3개 기업에 대한 이번 사업자승인조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투자규모다.정부는 94년11월남북경협 활성화조치를 발표했으나 5백만달러를 초과하는 사업은 허가하지 않았다.그러나 이번에 승인받은 3개 기업의 투자규모는각각 5백50만~7백만달러다.
따라서 정부가 그동안 적용해오던 경협 가이드라인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사실상 철폐된 셈이다.특히 삼성전자의 나진.선봉 통신센터 건설승인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는 그동안 삼성의 통신센터 진출에 대해 사회간접자본 투자라는 점을 이유로 불허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고삐를 풀어버렸다.북한의 태도여하에 따라 남북경협의 승인범위를 사회간접자본 분야로도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한 것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사업자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사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승인받은 기업들은 다시 북측 파트너와 협의,상세한 합작사업계획을 수립한 뒤 다시 사업승인을 받아야한다.북한이 4자회담을 즉각 거부만 않는다면 남북경협은 빠르면 오는 5~6월을고비로 물꼬가 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정부의 이번 조치는 경협이라는 측면에서만 볼때도 질적 확대를 유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88년 시작된 남북교류는 그동안 꾸준히확대돼 현재 남북교역량은 3억달러 규모다.그결과 남한은 중국.일본에 이어 북한의 세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남북교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남북경제교류의 99%가 단순 물자교류와 위탁가공에국한됐을뿐 보다 의미있는 남북경협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정부가 그동안 남북간에 제도적.법적 뒷받침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직접 투자를 막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에 의한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우리 기업들은1차로 나진.선봉에 공장을 세우고 북한 주민들을 직접 고용하는명실상부한 남북경협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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