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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칼럼>국경없는 인력경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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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70년대 미국 기업들이 해외직접투자에 열을 올린후 80년대 들어 국내경제가 침체했고 10년 늦게 일본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경험이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이제 막 시작된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은 머잖아 본격화될 것이고 결국 21세기 국내경제는 장미빛 전망보다 어려움으로 시작될 가능성마저 보인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필요하다면 국경을 넘어 고객 가까이에 생산시설은 물론 물류(物流)센터를 확보하고 나아가 소요자금,마지막엔 사람까지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 있다.
국내기업에 의해 인수된지 3년만에 흑자로 돌아선 한 유럽기업의 한국인 사장은 유럽내 다른 국가나 남미로 진출할 때 필요한기술인력을 서울에서 파견하기보다 자신이 훈련시킨 사람들을 재배치하는 계획을 본사와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국내 한 금융기관은 영국인을 현지에서 채용,서울로데려와 한국의 경제.산업.문화를 가르친 후 모국으로 돌려보내 런던은 물론 인근 국가로의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상당수 금융기관의 서울 사무소장 또는 지점장이 한국인인 것처럼 해외진출한 국내기업.금융기관의 장(長)도 현지인으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국내기업들도 이제는 인력고용 및 양성에 있어 기술직.관리직 또는 하위직급.상위관리자를 불문하고 피부 색깔.국적등을 더이상맹목적으로 앞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곧 기업간의 경쟁이 국경에 의해 제한받지 않듯이 기업의구성원인 사람끼리의 경쟁도 이미 국경을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이 국내산업을 공동화(空洞化)하고 결국 「국가이익」에 반(反)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가령 10년후 은퇴할 때 애초 약속한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걱정할 정도로 엉망이 된 연금관리를 외국의 자산관리 전문가에게맡겨 수익률이 대폭 개선될 수 있다면 외국전문가의 채용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살얼음을 걷는 듯한 경쟁,그에 따른 낮은 마진에도 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원가절감과 기술혁신뿐이다.
경영주가 누군가를 묻지 않고 직장을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해외인력과 경쟁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을 현장 근로자에서부터 최고경영자까지,그리고 산업정책을 세우는 관련부서 공무원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권성철 전문위원 경영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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