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적과의 포옹" 메론 벤베니스티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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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츠하크 라빈(1922~95)은 예루살렘 출생.67년의 7일전쟁 당시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으로 명성을 날리고 현지출생자로서는 처음 이스라엘 총리가 됐다.시오니즘을 지상명제로 받들면서도점령지역에서의 철군을 주장하는 등 상대방을 인 정하는 중도노선으로 노동당을 오랫동안 이끌었다.92년 선거에서 「9개월내의 평화」를 공약으로 15년만에 노동당 정권을 재건하고 총리가 됐다. 야세르 아라파트(1929~) 역시 예루살렘 출생.이집트 유학시절부터 민족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해 테러조직 「알-파타」의지도자가 된 아라파트는 69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에 취임해 20여년간 이 기구를 지도해왔다.
93년 9월 백악관 정원에서 만난 이 두 사람의 악수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적과의 포옹』(원제:Intimate Enemi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간)을 쓴 메론 벤베니스티는 『충격을 받았다 』고 술회한다.
그리고 벤베니스티가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 자체에 많은 중동문제 전문가들이 놀랐을 것이다.하버드 출신으로 예루살렘 부시장을 지낸 벤베니스티는 82년 이래 웨스트뱅크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를 창설,팔레스타인 문제에 대 해 누구보다 냉철한 연구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그가 충격받은 것은 분쟁의 양측이 악수할 만큼 여건이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며,그 충격을 소화하기 위해 상황을 재점검하며 쓴 것이 이 책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인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분쟁의 한쪽에서 보는 시각이지만 제3자에게도 충분히참고의 가치가 있는 것은 그가 실용주의의 입장을 엄격하게 지키기 때문이다.민족주의니 종교니 하는 배타적 이념 에 현혹돼서는분쟁의 양측이 포용되는 해결의 길을 결코 찾을 수 없다는 전제아래 이 지역의 현실문제를 직시할 것을 그는 주장한다.
그가 밝히고자 하는 현실의 핵심은 팔레스타인문제의 사회적 측면에 있다.분쟁당사자들은 양쪽 다 이 문제의 국제적 측면만 부각시키고 싶어했다.서양문명의 일원을 자임하는 이스라엘측은 서방국가,특히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인도주의와 민 주주의를 지키는 「문명국」으로 행세하고 싶다.가혹행위의 대상인 점령지역 주민을 자국민이 아닌 적국인으로 본다면 변명은 쉽다.
한편 아랍측에서는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명분때문에 분쟁을 민족간의 대결로 볼 뿐 민권문제를 민권문제로서 제기할 의지가 없다.
87년 12월에 시작된 「인티파타」는 사회적 봉기의 성격이 민족항쟁에 포개진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82년 레바논 침공으로PLO의 최대거점이 파괴됨에 따라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은 이스라엘 군부의 희망대로 그 구심점을 잃었다.그러나 외부의 구심점이사라지자 저항은 국내로 스며들었다.82~87년 사이에 이스라엘내 테러행위는 꾸준히 늘어났는데,그 대부분은 체계적인 지휘 없이 행해진 산발적 사건들이었다.
국가간 대항 형태가 약화됨에 따라 사회적 갈등 양상이 부각된데 인티파타의 뿌리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성공이 오히려 그 도덕적 파멸을 부채질했다고 할까.
인티파타는 양심적인 이스라엘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폭력성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이 심각한 국론분열의 위협을 해소해 준것은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의 적들이었다.
90년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격하고 아라파트가그를 열렬히 지지한 것이다.전 유대인은 시오니즘의 깃발 아래 다시 뭉치고,팔레스타인 아랍인은 차별받는 주민이 아니라 포로로잡혀 있는 적국인이 됐다.인티파타를 통해 인식 을 넓혀온 현실문제는 이념의 깃발에 도로 파묻혀 버렸다.
걸프전 처리과정에서 이스라엘 「자제력」의 시세는 상종가였다.
그 자제력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엄청나게값진 것이었다.이스라엘에는 67년 전쟁보다 더 깔끔한 승리였다. 이 승리가 저자에게는 「화해」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승리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신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한편 패배가 아랍인들을 근본주의적 아집으로 몰아넣는 것을 거듭 봐왔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라빈과 아라파트의 악수에 충격 을 느끼게된 것이다.
저자는 아직도 궁극적 화해를 낙관하지 못한다.이 화해가 이념의 극복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이념의 희석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신세대는 소비문화 탐닉을 통해 투쟁의 현장에서 도피했을 뿐이며,궁지에 몰린 아라파트가 어느정도의 대표성을 보장할지도 알 수 없는 일로 본다.실제로 양측에는 극단적으로 호전적인 태도가 벌떼같이 일어나고 있다.라빈은 이미 희생됐고,아라파트는 하마스의 표적이 돼 있다.
당장의 반발보다 저자가 더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은 역시 현실문제다.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예가 예루살렘이다.67년 이전에 예루살렘의 서쪽 외곽 일부만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역을 국토에 정식으로 편입시켜 놓았다.예루살렘을 양보하려는 유대인은 없다.예루살렘을 포기하려는 아랍인도 없다.양측을 만족시킬수 있는 예루살렘 귀속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해결못할 문제가 없으리라고 저자는 장담한다.
인종주의의 핍박을 가장 혹심하게 받아 온 바로 그 민족이 인종주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성에 대해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를 자처하는 이스라엘인의 책에서 이만한 상황분석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김기협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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