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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이동' 우려 씻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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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총선 이후의 한국을 바라보는 바깥세계의 시선에는 반가움과 우려가 엇갈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복권과 함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고 개혁추진에 힘이 실리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히게 됐다고 반기는 쪽이 대세다. 국회에 강력한 양강구도가 자리잡고, 급진 개혁세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문제해결을 시도하게 됐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화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반면 진보좌파의 득세로 인한 '왼쪽으로의 이동'에 대한 불안과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한국이라는 배가 한번도 가보지도 않은 미지의 해역(unchartered waters)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비유가 이를 상징한다. 열린우리당 내 좌파 진보세력들이 민노당과 손잡고 급진적 개혁을 밀어붙이거나, 대북 문제 및 대미 외교의 판을 흔들어 안팎으로 알력을 빚으리라는 걱정도 적지 않다.

이런 바깥의 우려와 오해에 대해 정부는 '정부 정책이 절대로 왼쪽으로 안 간다'며 적극적인 홍보를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두차례 국가투자설명회나 브리핑만으로 신뢰를 심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盧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리더십을 보이느냐에 있다. 盧대통령이 통합의 정치를 펴지 않고 이에 편승해 수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분열의 정치는 극으로 치닫는다. 이 경우 '여당 승리가 곧 정치 불안정이라는 역설(逆說)'도 배제 못한다.

둘째, 정부 여당은 말로만이 아닌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으로 대내외 신뢰를 심는 일이 시급하다. 언제까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 단계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사례로 보여주면서 인내와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그동안 국정 각 분야에서 250여개의 로드맵(行程表)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들은 알지 못한다. 특히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규제 철폐, 노동시장 개혁에 관한 구체적 프로그램은 해외투자가의 신뢰를 사는 데 필수적이다.

새 집권여당의 정체성(正體性) 확립 또한 시급한 과제다.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는 다양한 이념스펙트럼을 가진 4계파가 각기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상호견제와 경쟁 속 협력을 통해 하나의 리더십 아래 뭉쳐질 수 있느냐가 그 관건이다. 그러잖아도 협력적 자주국방, 균형적 실용외교에서 '협력적' '균형적'이란 수식어는 대외적으로 끊임없는 오해를 낳고 있다. 최소한 지역차원의 정체성도 없는 동북아공동체 비전에 굳이 안보정책의 기본틀을 의존하려는 허구(虛構)도 재점검을 요한다. 더 이상 색깔론으로 뒤집어 씌우는 세상이 아닌 바에야 차라리 이념상 차이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쪽이 오해도 안 사고 문제 해결을 쉽게 한다.

세계화시대에 국내자본만으로 고용과 소비를 진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출이 잘된다지만 국민총생산(GNP)의 70%를 점하는 소비와 투자는 극도로 위축돼 있다. 그 수출의 원동력인 정보기술(IT)산업마저 산업특성상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고용창출 및 일반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작은 편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외국투자와 기업을 적극 유치해야 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절박한 당위다. 부패세력 척결과 세대교체, 여성 진출 등이 기약하는 새 정치에 대한 희망은 소중하다. 만에 하나 한국사회의 추(錘)가 왼쪽으로 급히 쏠려 40년 압축성장의 과거를 부정하고, 자유화.개방화를 거스르고, 대외관계의 기본틀을 허문다면 새 시대의 기약도, 한국경제도 그야말로 절망이다.

변상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