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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홀가분한(?)外遊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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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난히 눈이 많았던 겨울이지만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어 백악관뒤뜰 자목련에 꽃망울이 맺혔다.모처럼 화사한 워싱턴의 봄날은 대만선거와 대만해협내 긴장을 주시하던 이들의 시름을 덜어주기에충분하다.
그러나 워싱턴 바닥에서 벌인 중.대만간 로비전쟁이 수그러들고소원(疎遠)해진 미.중(美.中)관계가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는않다.선거가 끝난 후 사흘만에 워싱턴으로 대만정부 대변인이 날아와 선거결과를 설명하는 간담회를 벌써 오래전 에 계획한 대만이라면 민선(民選)총통 리덩후이(李登輝)의 대미(對美)행보가 다분히 공격적일 것임을 예고한다.
내놓고 중국을 비난할 형편이 아니었던 한국정부는 미.중 관계악화가 정책입지를 좁힐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 고민했을 것이다.대만해협 긴장 와중에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던 우리 외무장관이 뉴욕을 거쳐 워싱턴에 와 있다.
오래전 예정된 일정이었는지 몰라도 미.중 관계가 불편한 시점에 양국방문을 감행한(?) 공노명(孔魯明)외무장관의 임무를 통상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만약 특이사항 없는 중국방문이었다면 일정과 관련,미국과 필요이상의 사전협의를 거 쳤거나 쓸데없는 오해를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방문 또한 통상적 목적외에 별뜻이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우방관계라고 하지만 석연치 않다.북한이 여전히 한.미 양국의 주요 우려대상이지만 선거철 미국의 대북(對北)정책은 「북한달래기」가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실속없는 예방(禮訪)을 반기기에 미국은 한가롭지 않다.
이를 모르는 한국정부가 아니라면 총선을 앞두고 미.중 양국방문길에 오른 외무장관의 심기(心氣)가 편할 수 없는 말못할 사연이 있으리라 추측할 수밖에 없다.억측은 그만두고라도 옛 소련이 사라진 마당에 가까워지기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는 미.중양국을 오가며 우리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외무장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한반도 장래와 관련해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대일진대 양국사이에서 우리 입장을 개진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게다가 전례(前例)에 비춰 국내정치 일정과 무관하게홀가분히 나설 수 없는 외무장관의 외유(外遊)라 면 적어도 이번 미.중 방문은 뼈있는 논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상정하는 것이자연스럽다.
다만 논의내용이 보다 생산적인 구상으로 채워지고 논의에 임하는 태도 또한 의연했다면 총선을 앞두고 소모적인 싸움에 여념없는 정치판을 뒤로 하고 어려운 시점에 힘겨운 나들이를 한 외무장관에 그 공(功)을 돌려도 무방하다.
길정우 본사 在美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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