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떴다 정성룡…벤치 설움 딛고 올림픽 대표 수문장 주전 굳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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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주전 수문장 정성룡(23·성남·사진). 2인자의 꼬리표를 뗀 지 얼마 안 됐지만 이젠 그가 없는 박성화팀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운까지 따르면서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정성룡은 2005년 박성화 감독이 이끌던 한국 청소년대표팀의 골키퍼였다. 당시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그는 차기석(전남)에게 밀려 1초도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2004년 서귀포고를 졸업하고 입단한 포항 스틸러스에서도 김병지(서울)와 신화용(포항)에 밀려 벤치를 지키는 신세였다.

2005년까지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던 정성룡은 2006년 어렵게 찾아온 몇 차례 출전에서 맹활약, 깊은 인상을 남기더니 지난해 7월 아시안컵 출전 대표팀에 뽑혔다. 이번에는 ‘거대한 산’ 이운재(수원)에 막혀 대회 내내 ‘견학’만 했다. 그런데 귀국 후 불거진 음주파문이 역설적으로 그에게 행운이 됐다.

이운재가 빠진 뒤 먼저 기회가 주어진 김용대(광주), 김영광(울산)이 기대에 못 미쳤다. 기대도 안 했던 막내 정성룡에게까지 기회가 왔는데 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대표팀 수문장이 올림픽팀 골문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일. 올림픽팀 주전으로 뛰면서 기량도 더욱 좋아지고 있다. 1m90㎝ 장신인 그는 팔까지 유난히 길어 수비 폭이 넓다. 또 성격까지 차분하다.

지난해 8월 22일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 1차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정성룡은 골과 다름없는 헤딩슛을 선방하더니 상대와 맞선 1대1 위기에서는 침착하게 슈팅각도를 좁혀 실점을 막았다. 경기 후 그는 “(나를) 네덜란드에서 벤치에만 앉혀 뒀던 박성화 감독님께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고 2년간 가슴속에 담아뒀던 얘기를 꺼냈다.

실력에는 행운도 따른다. 27일 코트디부아르와의 올림픽팀 평가전에서는 골프의 홀인원이나 야구의 사이클링히트처럼 평생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행운을 맛봤다.

전반 40분 길게 차올린 골킥이 두 번 바운드된 뒤 상대 골문으로 들어갔다. 한국의 선제골이었다. 그는 “생애 첫 골인데 정말 들어갈 줄 몰랐다. 뒤 공간을 노렸는데 그래도 상대 골키퍼가 잡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골키퍼 폴 로빈슨도 지난해 3월 정성룡과 비슷한 상황에서 골을 넣었다. 올림픽팀 동료들은 이를 응용해 그에게 ‘룡빈슨’이라는 별명을 지어 줬다. 동료들은 그의 골이 베이징에서 행운을 불러올 길조라 믿고 있다.

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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