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종합세트’ 주공 본사 압수수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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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25일 오전 9시50분부터 2시간30분 동안 성남시 분당에 있는 대한주택공사 본사 내 택지설계단·택지개발처·도시기반처 3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수사관 10여 명은 사무실에서 최근 3년간 공사발주 관련 서류와 컴퓨터 자료 등 일곱 상자 분량을 압수했다. 주공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창사(1962년) 이래 처음이다.

당초 주공 간부에게 로비를 한 건설브로커를 검거하면서 시작된 이번 수사는 전관예우·인사청탁·수주비리 등 거대 공기업의 각종 비리가 고구마 줄기 엮이듯 나오는 양상이다.

◇브로커에서 주공 간부로=경찰은 지난달 25일 건설브로커 나모(53)씨를 고철철거 업체의 부탁을 받고 주공 간부 7~8명에게 2400만원대의 골프 및 술 접대를 한 혐의로 구속하면서 주공 간부들의 비리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후 나씨로부터 740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판교사업단 전문위원 김모(51·구속)씨가 2005년 설계변경 대가로 건설업체로부터 2억7000만원을 챙긴 사실을 확인, 주공 고위층으로 수사를 확대됐다. 이어 김씨가 주공의 전 서울본부장 권모(61)씨에게 인사청탁의 대가로 3700만원을 건넨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24일 권씨를 김씨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와 주공 직원들에게 향응을 제공(뇌물 공여)한 혐의로 구속했다.

◇전관예우?=경찰에 따르면 구속된 권씨는 2005년 5월 퇴직 후 한 토목설계회사의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이후 3년여 동안 20건, 200억원대의 대규모 설계용역을 주공에서 수주받았다고 한다. 이전까지 이 설계회사는 주공으로부터 수주 실적이 거의 없었다. 권씨는 주공 퇴직 직원 8∼9명을 스카우트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앞서 실시한 권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는 100만원씩 봉투에 넣은 수천만원의 현금이 발견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수사 관계자는 “권씨가 주공 직원 접대용으로 7000만원어치의 카드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주공 용역 수주 과정에서 수억원대의 뇌물이 오갔다는 혐의가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주공 3개 부서의 수사대상 직원은 10여 명에 이르고 임원급 1∼2명이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주공 퇴직자에 밀어주기 의혹= 경찰은 권씨를 추궁, 택지설계단 등 3개 부서에 대한 로비 정황을 확인해 이날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경찰 관계자는 “퇴직자 200여 명이 주공 사업과 연관된 업체에 입사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주공이 퇴직자들이 간 업체에 밀어주기식으로 공사를 발주했을 가능성에 대해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건설브로커 나씨에게 향응을 제공받은 주공 인천지사와 본사 구조설계팀, 오산세교지구의 간부들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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