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담배 피우면 안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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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06년 10월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니코틴 냄새가 진동하고 연기가 가득했다.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오페라 ‘카르멘’에서 발레리나들은 지름 2㎝, 길이 20㎝짜리 시가를 입에 물고 성냥불을 붙이고 실제로 시가를 빨기도 했다. 메리메의 원작 소설에선 담배가 등장한다. 비제의 오페라로 더 유명한 ‘카르멘’은 1막에서 담배 공장에서 여공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담배를 꼬나물고 하늘을 향해 동그란 연기를 뿜어댄다.

에드워드 올비의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2막에서 여주인공 마사는 남자친구 닉에게 담배 한 대 달라고 말한다. 대본상의 지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그는 그녀에게 담뱃불을 붙여준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손은 그의 두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담배는 헨리크 입센, 오스카 와일드, 노엘 카워드의 작품에서도 필수적이다. 체호프의 연극 ‘세 자매’, 유명 뮤지컬 ‘시카고’ ‘카바레’에서도 흡연 장면이 등장한다. 연극ㆍ뮤지컬ㆍ오페라에서 담배는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카르멘’에서 담배는 성적 도발이자 자유분방함의 상징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말하거나, 남자의 면전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것은 그를 유혹하고 싶다는 얘기다. 도박판, 범죄 소굴, 건방진 반항아, 쾌락에 푹 빠진 인물을 묘사할 때 담배만큼 효과적인 소품도 없다.
2007년 7월 1일부터 영국에선 실내 공공장소에서의 금연법이 시행되면서 무대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다. 이를 위반하면 최고 2500파운드(약 4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피카디리 시어터에서 상연된 뮤지컬 ‘그리스’에서 흡연 장면은 불꽃과 연기를 내는 무대 효과로 대체됐다.

영국 연극계에서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다행히 작품의 줄거리에 따라 흡연 장면이 필수적인 경우 특별 허가를 받은 다음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됐다. 물론 극장 입구엔 “이 공연에는 흡연 장면이 등장합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와는 달리 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는 니코틴이 없는 허브 담배도 피울 수 없다. 미국 뉴욕,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기 안 나는 가짜 담배를 물고 무대에 탤컴 파우다를 뿌리기도 한다.

제임스 딘이나 마크 트웨인, 윈스턴 처칠 역을 연기할 때 담배나 시가는 필수품이다. 간접 흡연의 폐해를 막기 위한 금연법 때문에 담배를 물고만 있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사실 극장은 실내공간이긴 하지만 지붕도 높고 공기 순화도 잘 되는 비교적 탁 트인 공간이다.

미국의 한 극단은 처음부터 벌금을 낼 각오를 했다. 무대 위의 흡연이 불만스러워 공연 도중 퇴장하는 관객에게는 입장료 전액을 환불하겠다고 미리 선언했다. 도중에 나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경찰에서도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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