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의Food&Med] 한식은 세계 최고의 건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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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비빔밥·설렁탕 등을 즐겨먹는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의 특징에 대해 물으면 흔히 나오는 단어가 스파이시(spicy·자극적), 헬시(heathy·건강), 펀(fun·재미)이다.

우리 음식이 자극적인 것은 고추·마늘을 많이 쓰는 향신료 때문일 것이다. 먹으면 입이 얼얼하고 땀이 줄줄 흐르는 음식이 외국인에겐 ‘핫(hot)’하게 느껴졌을 법하다. 그러나 이 사실이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니다. 고추를 더 많이 쓰는 태국 음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 증거다. 게다가 마늘·고추는 최고의 웰빙식품이다.

우리 음식이 건강식이라는 것은 자부할 만하다. 세계 최고의 웰빙식으로 통하는 지중해식 식사 못지않다. 오히려 그 이상이다. 우리 음식은 밥과 다양한 반찬이 함께 나오는 균형식이다. 채식 대 육식 비율은 8대2의 황금비율이다. 김치·청국장 등 발효음식이 발달했다. 육류를 삶고 찌며, 생선을 찜·조림·회로 이용하는 등 조리법도 건강 친화적이다. 기름지고 짠 패스트 푸드가 아니라 전형적인 슬로 푸드다.

한국 음식이 ‘펀’하다는 것은 같은 음식이라도 조리법이 다양해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는 의미다. 주한 외교사절의 부인들이 우리 음식 배우기에 열심인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음식은 또 미적 감각도 뛰어나다. 음식 간의 색채미·조화미를 고려하고 수(壽) 등 기원하는 글자를 수놓은 고배 음식이 좋은 예다. 이야기(story)도 있다. 음식마다 전해오는 전설·민담은 한국 음식의 즐거움을 더욱 높여준다.

이런 우리 음식을 놔두고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비만·고혈압·당뇨병·심장병·뇌졸중 등 서구형 질환과 대장암·상부 위암·전립선암 등 서구형 암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음식을 홀대한 결과일 수 있어서다.

전통 음식과의 친밀도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은 어릴 때 자주 맛을 보게 하는 것. 인간의 후각·미각을 통한 경험은 거의 평생이라고 할 만큼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제삿날, 어릴 때 할머니가 끓여준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이래서다.

선진국은 국민이 자국 식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도록 미각·식생활 교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 프랑스의 ‘미각 주간’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행사가 열리는 주엔 전국의 베테랑 요리사 3500명이 직접 초등학교를 찾아가 미각 조리 수업(요리실습·시식회)을 한다. ‘세대를 초월한 미각 전국 콩쿠르’도 프랑스 전통 음식에 대한 국민의 사랑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대회에선 조부모와 손자·손녀가 한 조가 돼 요리의 맛과 솜씨를 겨룬다. 일본도 어린이 식생활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2005년에 제정한 식육(食育)기본법의 기본 취지는 어린이와 국민의 건강이 바로 일본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일본의 식육기본법을 벤치마킹한 식생활교육추진법을 추진 중이나 몇 년째 논의만 하고 있다. 이렇게 ‘허송’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된 식생활 교육과 미각 훈련을 받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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