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서 드러난것-언론통폐합 치밀한 사전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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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12및 5.18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80년 12월 실시된 언론통폐합 조치에 대해 전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이 조치가 언론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키고 권력 순응체질의 「해바라기 언론」으로 만들어 신군부의 권력장악및 유지에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앞으로 이를 입증하기 위해▶이 조치가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됐는지▶집행과정에 불법성이 없었는지▶언론통폐합이 당시 과연 필요했는 지 등을 집중 수사중이다.검찰은 이미 80년 「언론학살」이 사전의 치밀한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됐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12.12이후 신군부는 보안사 내에 정보처를 설치한뒤 그 산하에 언론대책반을 은밀히 구성한다.신군부는 이 기구를 중심으로고도의 언론통제를 구사한다.
계엄사 산하 시청 보도검열단이 공식적으로 언론통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테스크 포스」를 조직한 것은 신군부의 「음모」가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신군부는 이와 별도로 보안사 밀실에서 집권 시나리오를 담은 소위 「K공작 계획」도 작성한다.
신군부의 「의도성」은 통폐합 조치 직전 작성된 여러 문건에서도 입증된다.
보안사가 작성한 「언론종합대책」에는 통폐합의 목적을 「언론의저항 체질을 자율적 협조 체제로 바꾸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또 국보위가 만든 「국가홍보기본계획」에는 「계엄 해제후 상황을 상정해 언론에 대한 협조와 조정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언론정책의 전제」라고 못박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언론대책반 설치,K공작 계획,언론인 해직,정기간행물 폐간 등의 조치는 바로 언론통폐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고 추론한다.
이와 함께 검찰은 언론통폐합의 불법성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신군부는 자신들에게 협조하는 이광표.허문도 등 몇몇 전.
현직 언론계 인사 등을 동원해 보안사 밀실에서 군사작전을 펴듯통폐합안을 계획했다.이어 언론사주들을 보안사로 불러들여 미리 만든 양식에 따라 포기 각서를 강요한뒤 방송.신문협 회가 자율결의한 것처럼 위장했다.
군이 민간인인 언론사주들을 연행해 경영권 포기를 강요한 것은명백한 사유재산 침탈이라는 것이다.헌법.언론관계법등 어디에도 통폐합을 합리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도 검찰의 판단기준이다.
또 「언론통폐합 조치가 과연 필요했느냐」는 정당성 여부도 신군부의 집권의도를 밝히는 데 중요 판단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화평(許和平)의원(당시 청와대 보좌관)등 신군부 핵심들은『건전한 언론 구조 마련을 위해 언론통폐합이 필요했다』며 통폐합 조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통폐합 이후 신군부의 자기부정이 5,6공내내 거듭된다.우선 87년 6.29선언이후 신문창간 제한 등 통제가 해제된다.이어 90년 6월 민방 TV 허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구조개편안」이 발표된다.통폐합안을 결재했던 두 주역 인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이 스스로 통폐합의 정당성을 부정한 셈이다.
따라서 언론통폐합이 신군부가 정권장악및 유지를 위해 필요성과정당성없는 상황에서 강압적으로 집행됐음을 구제적으로 입증하는 데 검찰 수사의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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