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는 부결된 파업 강행 또 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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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수 차량 야적장에 출고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다. 9일부터 화물연대 울산지부 소속 현대 카캐리어 분회가 운송료 35% 인상을 요구하며 운송 거부에 들어가 탁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 부결은 이 회사 근로자는 물론 노동계 전반에도 적잖은 충격을 던지고 있다. 현대차는 2000년 이후 다섯 차례의 ‘정치파업’을 감행하면서 안정적인 지지표를 얻어 왔다. 대우자동차 매각 반대(2000년), 노동법 개정 투쟁(2002년), 비정규직 법안 개선(2003, 2004년), 노동계 4대 요구안 쟁취(2006년)와 관련된 파업이 그것이다. 최저 50.1%에서 최고 69.4%의 찬성률을 보였다.

이번 투표 결과는 현대차 노조 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있음을 가늠케 한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찬반 투표에 나선 것은 ‘연대의 논리’때문이었다. 많은 시민이 촛불집회에 나서는 상황에서 대기업 근로자들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찬반투표 시작 전부터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 과거와는 다른 기류가 흘렀다. 고유가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파업을 해서 되겠느냐는 목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높았다. 자칫 ‘현대차 불매운동’ 같은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노조가 파업에 나서는 것은 노동자의 이익에 오히려 반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노조 게시판엔 “촛불시위 분위기가 불법파업 반대로 넘어올 수 있다”(아이디 ‘혹시’), “노조는 임금과 복지를 먼저 생각해 달라”(아이디 ‘브랜드 향상’), “더 이상 상급단체의 거수기가 돼서는 안 된다”(아이디 ‘집회현장’) 같은 비판적 의견이 쏟아졌다.

파업에 비판적인 노조 내부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노조 집행부는 파업을 강행할 태세다. 민주노총은 17일 총파업 시기와 방법을 발표한다.

금속노조와 현대차 노조 규정에는 ‘쟁의행위는 재적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면 ‘불법파업’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 사측 관계자는 “불법파업이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릴까 걱정”이라며 “노조 규약을 어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노조는 26, 27일에도 올해 임단협과 관련, 금속노조 총파업에 동참할지를 결정하는 투표를 앞두고 있다. 사용자 측이 불참해 온 중앙교섭의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처음 진행되는 산별 교섭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만만찮아 다음 주 투표도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노조원 상당수는 금속노조가 임금협상에 나섬에 따라 임금 인상률이 하향평준화되거나, 2중교섭으로 투쟁 강도가 분산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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