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의 ㅋㅋㅋ <4> 조국과 모국 사이 … 샌드위치 이민선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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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축구 선수에게 골은 최고의 순간이다.

간절히 원하던 골이 터지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선수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로 빠져든다. 그런데 이번 유로 2008에서는 골을 넣고도 감정을 절제하는 선수들이 생겨났다. 환호하는 동료들과 달리 골 세리머니를 생략한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선수들이 여럿 보였다. 태어난 조국과 살고 있는 조국의 경계선상에서 어느 쪽에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아버지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걸로 기억한다. 수원 삼성 감독으로 취임한 후 이전에 계셨던 울산과의 첫 원정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경기에 져서 맘이 상한 울산 팬들 앞에서 조용히 있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버지의 열성적인 팬이었던 나는, 내가 자랐던 울산의 친구들 앞에서 아빠가 이긴 게 굉장히 자랑스럽게만 생각됐던 터라 이날 아버지의 인터뷰가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하물며 자신이 태어났고, 아직도 많은 가족이 거기서 살고 있고, 부모님들은 여전히 그곳의 언어로 생활하는데, 내가 뛰고 있는 이 팀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야킨.

‘야킨’은 스위스식 이름이 아니다. 그가 태어난 터키 이름이다. 아무리 미국에 살아도 ‘순이’가 한국 이름인 것하고 똑같다. 터키가 제3국과의 친선경기를 스위스에서 하면 경기장이 터키 사람들로 꽉 찰 만큼 스위스에는 터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이 아주 많다. 일상생활에서 서로 많이 부닥치는 탓인지 서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런 영향 탓인지 2005년 독일 월드컵 예선 때에도 양팀 선수들은 큰 난투극을 벌였다. 그런데 두 팀의 11일(한국시간) 경기에서 터키 출신의 야킨이 터키 골문에 골을 넣은 것이다. 그는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

독일의 포돌스키도 마찬가지였다. 폴디(나와 문자를 주고받을 때 쓰는 애칭)도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아직도 가족 중에 많은 사람이 폴란드에 산다고 했다. 집에서 폴란드어를 쓰기 때문에 폴디의 독일말은 거의 우리 아버지의 독일말 수준이다. 또 그는 폴란드 음식을 먹고 자랐다. 그날 경기장에는 그의 가족과 폴란드에 사는 친지가 많이 왔다. 독일과 폴란드의 8일 경기에서 폴디가 두 골을 성공시키자 동료들의 축하는 격렬했다. 하지만 폴디는 조용히 원위치했다. 평소 과감하고 겁 없이 들이대는 스타일인 폴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팀에서도 주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서 이 골은 폴디에게 엄청나게 큰 거였을 텐데…. 예상하지 않았던 폴디의 모습에서 핏줄의 끈적함이 느껴졌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데쿠와 페페는 포르투갈에서, 세르비아 출신의 베라미는 스위스에서, 또 터키의 알틴톱은 독일에서 뛰고 있다.

이런 선수들 중에는 일부러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는 선수들도 있지만, 아예 국가 자체를 모르는 선수들도 있다. 하기야 그 나라 말을 못하는 국가대표 선수들도 있을 정도니까.

나는 궁금하다. 과연 이 선수들도 국가가 울려퍼지면 우리처럼 심장이 쿵쿵거리고 가슴이 찡하게 아파올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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