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을 공부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5호 39면

간혹 대학 강연을 하거나 신입사원과 만나는 자리에 가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사장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다 귀하고 아름답게 여긴다’는 말과 함께 꼭 하는 말이 있다. ‘문사철(文史哲)’에 힘쓰라는 것이다
.
문사철이라 함은 문학·역사·철학을 일컫는다. 보통 인문학이라 칭해지는 학문이 문사철로 이뤄져 있다. 자칫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한 껍질 걷어내고 보면 문사철은 우리에게 세상 보는 안목과 선한 가치관을 키워 준다. 학문의 근본이 되는 인문학이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문사철은 서양의 전통이 아닌, 동양적 학풍에 기인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과거시험에 출제되는 과목이 바로 문사철이었다. 문학을 익혀 시를 짓고, 고금의 역사를 외우고, 공맹의 철학을 공부해 답안지를 작성한다. 과거시험 과목을 문사철로 지정해 놓은 것은 동양에서 문학·역사·철학이 차치하는 비중이 막중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학문들이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한 초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이나 기업·국가 등 삶의 모든 경영에 가장 시급하고도 긴요한 것이 바로 통찰(洞察)의 힘이다. 통찰이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사이트(insight)다. 이러한 통찰의 힘을 기르는 데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다시 보자는 것이고, 인문학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며, 인문학의 위력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진정한 통찰의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아울러 우리는 창조적 상상력이 미래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상상력은 거저 나오는 게 아니다. 상상력의 뿌리와 밑천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담금질해 주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내놓으며 ‘창의적 기업’ 1위에 오른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를 보자. 그의 학력은 대학을 한 학기 다니다 중퇴한 것이 전부다. 그런 그가 대학에서 들었던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청강으로 들었던 서예 수업이라고 한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애플의 상징이 된 매킨토시의 예쁜 글자체를 개발하고, 아이팟의 디자인을 생각해 냈다. 플라톤과 호메로스로 시작해 카프카에 이르는 고전 독서 프로그램과 한때 심취했던 동양철학이 오늘의 애플을 만든 힘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는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라고 한다. 다 합쳐야 7000명이 안 되는 하버드대 학부생 중에 이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 800명에 이른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이라크 전쟁의 도덕성이나 최근 정치적 관심사에 대해 철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려는 학생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철학이 그 모선(母船)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덕이다. 탁상공론식이고 철학 고전에 의존하던 교육방식을 바꿔 심리학·경제학 등 다른 학문과 접목하려는 시도도 주효했다. 이들은 플라톤·로크·칸트 등의 고전을 읽고, 그들의 철학이 작금의 현실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강의하고 토론한다. 국내 대학 인문학과들이 취업률이 낮아 미달 사태가 나고 폐과의 운명을 겪기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경영자가 되고, 의사가 되고, 법조인이 된다. 이들은 전문직업인으로 기능적 역할은 훌륭히 해낼지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부족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자. 젊은이들이 예전에 비해 똑똑해지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실상 모두가 영어나 자격증 시험 등 취업 준비에만 몰두한다.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나 인간이 추구해 온 가치에 대해 무관심하고 심성을 정화하는 문학도 배우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인간적 향기가 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것은 단편적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다. 표피적인 지식은 이미 인터넷에 다 있다. 논리적인 사고와 통찰력,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는 창의력을 가진 인재가 목마른 시대다. 불확실성의 벽을 넘어 새로운 비전과 돌파구를 찾고자 할 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세상을 꿰뚫어 보는 혜안과 통찰의 힘이다. 창조와 상상력의 지혜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인간적인 향기다. 이러한 자질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문사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