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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어린이책]“주스 비가 오면 빙하시대로 ? ” 엉뚱한 상상에 과학이 춤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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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있다면? 없다면!
정재승·꿈꾸는 과학 글, 정훈이 그림
푸른숲, 288쪽, 1만20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베스트셀러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동아시아)의 저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신작을 냈다. 『… 과학 콘서트』가 일상생활을 과학으로 풀어낸 책이라면, 『있다면? 없다면!』은 ‘엉뚱한 상상’을 과학과 결합한 책이다. ‘과학의 시작은 상상’이라는 저자의 소신에 따른, 또 ‘상상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에 따른 기획이다.

책은 “만약 비가 과일주스라면?” “만약 사람에게 뿔이 있다면?” “만약 입이 배에 달렸다면?”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만약 태양이 두 개라면?” 등 열일곱 가지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을 제시하고, 그 상상의 세계를 과학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봤다. 이른바 ‘과학적 상상’의 길잡이 격이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뿔이 있다면, 사람의 신체 구조는 바뀌게 된다. 보통 사람의 머리 무게는 3.5㎏, 머리를 통과하는 혈액의 무게는 1㎏이다. 여기에 2.5㎏인 3년생 사슴의 뿔이 더해지면,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기 위해 목이 굵어지고 어깨와 목 뒤 근육이 우람해진다. 또 위와 앞으로 옮겨진 무게중심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엉덩이와 허벅지가 토실토실해지고 다리도 지금보다 훨씬 굵어진다.

만약 하늘에서 주스 비가 내린다면, 세상은 훨씬 ‘엉망’이 된다. 주스 비가 오는 날, 거리마다 향긋한 내음이 가득하고 한강에는 샛노란 주스가 멋진 물결을 이루며 흘러갈 터다. 주스 고드름과 주스 눈을 즐길 수 있는 겨울은 더 신난다. 하지만 건축물들은 남아나지 못한다. 산성인 주스 비가 석고와 대리석은 물론 철까지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또 주스 비의 습기와 양분 덕에 지구는 각종 세균과 곰팡이들이 점령한다. 주스 비에 촉촉이 젖은 포유류의 수북한 털 속에도 곰팡이와 세균이 득시글거릴 테니, 주스 비가 내리는 지구는 피부가 반들반들하고 딱딱한 갑각류의 전성시대가 될지 모를 일이다.

식물에게도 주스 비는 재앙이다. 물이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이동하는 ‘삼투압 현상’에 따라 식물의 뿌리는 흙 속의 물을 흡수한다. 하지만 뿌리의 진액보다 농도가 진한 주스가 땅 속에 스며들어 있으니, 뿌리가 물을 흡수하기 어려워진다. 웬만한 식물을 모두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또 지구의 기후도 바뀐다. 주스는 물보다 점성도가 크기 때문에 천천히 흐른다. 해류의 점성이 높아져 이동속도가 느려지면, 그만큼 열의 순환이 더뎌지게 된다. 바닷물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빠른 속도로 순환하지 못하니 적도는 지금보다 더 뜨거워지고 그 외의 지역은 모두 얼어붙게 된다. 아마 한반도 역시 빙하지대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과학적 상상이 퍽 재미있다. “과학적 상상력이 만화적 상상력보다 더 유쾌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자연스레 상상이 아닌 현실의 과학을 익힐 기회도 된다.

책의 공동저자 ‘꿈꾸는 과학’은 정 교수가 대중적 과학 글쓰기를 위해 만든 대학생 연합 동아리다. 40여명의 대학생들이 매주 모여 과학적 글쓰기 연습과 독서 토론을 통해 과학적 상상력과 비판적 사고를 키워가고 있다. 2003년 5월 결성돼 과학과 상상을 주제로 끝없는 브레인스토밍을 펼친 끝에 낸 첫 책이 바로 이 『있다면? 없다면!』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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