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박제는 생을 변장시킨 ‘슬픈 오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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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시실 한 방 가득 낙하산 천으로 만든 ‘부푼-가라앉은’(2006). 얼핏 보면 인형에 풍선처럼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신체의 내장기관 모양이다.

죽은 새 박제들을 모아 털실옷을 껴입힌 ‘기숙생들’(1971)

공중에 동물박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프랑스 거장 아네트 메사제(65)는 인형을 학대하는 짓궂은 아이처럼 목 자른 박제에 봉제인형의 머리를 맞춰놨다. 너구리 몸에 미키마우스 머리를 단 박제, 독수리 몸에 닭머리를 단 박제 등이 제각각 거울을 타고 앉아 있다. 그 거울엔 기괴한 동물들을 올려다보는 당신의 놀란 얼굴이 비친다. ‘그들과 우리, 우리와 그들’(2000)이다.

어두운 방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가로·세로 12m의 빨간 비단천이 바람에 일렁거린다. “출산할 때 자궁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피 물결 혹은 고래 뱃속을 나와 인간이 되는 피노키오 얘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카지노’다.

파리 국립미술학교 교수인 아네트 메사제는 “‘카지노’는 작가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작가로서 모든 명성을 걸고 작품을 만든다.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기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네트 메사제는 이 ‘카지노’로 미술판 최대의 내기에서 큰 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라며 “중요한 상을 받는다는 건 ‘케이크 위에 얹힌 체리장식’과 같은 보상이다. 수상 이후에도 삶에 대한 태도나 질문은 여전하다”고 잘라 말했다.

작가는 ‘작업한다’는 노동 개념보다는 ‘수집한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박제새들에게 털실로 뜬 옷을 껴입힌 ‘기숙생들’(1971)은 깜찍한 듯 그로테스크한 수집품이다. 소녀가 소꿉놀이에서 엄마 흉내를 내며 동물들을 보살피고, 구속하는 모양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퐁피두 센터 큐레이터 소피 뒤플레는 “박제는 죽은 것을 산 것처럼 만들어 곁에 두는 헛된 시도이자 살아 있는 것인 양 착각을 느끼게 하는 슬픈 오브제”라고 풀이했다. 메사제는 “박제와 사진은 그런 맥락에서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대상을 가까이 두고 소유하기 위해 사진을 적극적으로 찍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화 같고 귀엽다며 손 내밀고 다가섰다가 섬뜩해져 내민 손을 거두게 하는 게 그의 작품들이다. 평소 “예술을 하는 것은 현실을 변장시키는 것과 같다”고 말해 온 그다.

그러나 못된 소녀와도 같은 그의 작품이 말하는 것은 반목이 아니라 조화다. 삶도 그렇다. 아네트 메사제는 “작품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몸이 아플 때, 세상에 큰 사건이 났을 때 나 역시 우울해진다. 그러다가 길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치고, 작고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스쳐 지나가면 다시 삶과 화해를 하고 즐거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전시의 순회전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음달 15일까지 열린다. 작가의 대표작 60여 점이 나왔다. 이후 일본 모리미술관, 영국 헤이우드 갤러리로 옮겨간다. 02-2188-611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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