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25명 모두 무사해요” 82시간 만에 확인한 샤오런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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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런창아! 부모님과 가족 모두 무사하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아라.”

지진 피해를 본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애를 태우던 샤오런창(肖仁强·44·사진)이 16일 오전 10시 지진 발생 후 82시간 동안 꿈에도 기다리던 전화를 넷째형으로부터 받았다.

대지진의 진앙지인 쓰촨(四川)성 원촨(汶川)현이 고향인 샤오는 12일 지진 발생 소식을 듣고 어렵게 베이징에서 2000㎞를 날아 쓰촨성 청두(成都)시에 도착했다. 고향에 사는 장모·아내, 누나와 네 명의 형·조카 등 일가 친척 25명의 생사를 수소문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는 6남매 중 막네다. 그러나 이날 오전까지 닷새 동안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 등 모든 통신과 교통이 지진으로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구조를 위해 원촨현에 도착한 인민해방군이 군용전화를 현지의 생존자들에게 내줘 외지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배려한 덕분에 그의 형이 마침내 샤오와 통화할 수 있었다.

샤오의 형은 전화 통화에서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원촨현 정부 소재지에서 줄을 길게 늘어서 전화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또 “집 근처에서 10여 명이 죽은 것을 확인했으나 우리 일가 친척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층짜리 집이 지진 당시 심하게 흔들렸으나 건물이 일부 파손된 것 외에는 재산피해도 크지 않다”며 샤오를 안심시켰다.

샤오는 이 소식을 기자에게 전하면서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어둡고 긴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 생명을 얻은 기분”이라고 감격해했다.

샤오의 일가 친척이 살던 곳은 원촨현 정부 소재지 중심가에 있다. 지진의 정확한 진앙지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40여 ㎞ 떨어진 잉슈(映秀)였기 때문에 샤오의 일가 친척들은 대재앙을 극적으로 피한 것이다. 샤오는 “고구마처럼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원촨현의 남부에 있는 잉슈는 폐허가 됐지만 큰 산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있는 원촨현 정부 소재지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원촨현 정부 소재지와 잉슈 마을 사이에 있는 거대한 산줄기가 지진의 충격을 완충해 주는 방어벽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은 구조활동이 계속되면서 진앙지 한가운데 자리했던 잉슈와 워룽(臥龍) 등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족의 생존이 확인되자 샤오는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내 가족은 무사해 다행이라지만 많은 이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진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고향마을에 들어가 자원봉사자로 등록해 구호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중앙일보를 비롯해 그동안 우리 가족과 원촨현 주민이 무사하길 빌어준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청두(쓰촨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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