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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몰표 반작용… 매케인 ‘인종카드’ 꺼낼 수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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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12면

오바마, 힐러리

미국 대통령의 전형적 프로필은 ‘아이비 리그(동부 지역 8개 명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개신교회에 다니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남자’다. 민주당은 이런 통념을 깨고 새로운 정치 실험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선거전 도중 ‘대통령이 되면 바티칸에 충성할 것이며 상당수 가톨릭 국가들처럼 미국도 가난한 독재 국가가 될 것’이라는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렸다.

오바마 대세 굳혔지만 본선 경쟁력엔 경고음

민주당은 이번에 흑인인 버락 오바마 후보와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맞대결로 당내 경선을 치르고 있다. 두 사람은 흑인·여성이라는 점만 빼면 프로필의 나머지 ‘요건’을 충족한다.

최근 미 언론은 오바마가 사실상 경선에서 승리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대의원의 93.5%가 이미 결정돼 힐리리가 판세를 뒤집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바마는 6일 당내 경선 이후 10여 명의 수퍼대의원을 추가 확보했으며 경선에서 사퇴한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도 오바마의 승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11월 선거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물리치려면 인종주의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오바마는 하버드대 법대를 나왔으며 개신교회를 다닌다. 어머니 스탠리 앤 더넘 소에토로는 앵글로색슨 계통으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6명의 미 대통령과 친척 관계가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자신이 시카고에서 다니던 교회 담임 목사인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의 설교내용과 인터뷰가 일으킨 파문으로 3월부터 곤욕을 치렀다. 흑인인 라이트 목사는 ‘9·11 테러 공격은 미국이 자초했으며 에이즈는 흑인 멸종을 위한 미국 정부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오바마가 라이트 목사와 절교를 선언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오바마 부부의 결혼식과 두 딸의 세례 의식을 집전한 것은 라이트였다. 라이트 목사의 발언 파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6일 노스캐롤라이나주 경선에서 힐러리에게 압승하고 인디애나주에서 불과 2%포인트밖에 지지 않아 일단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가 예방주사를 맞은 것인지 아니면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는 불확실하다.

힐리리는 ‘본선 경쟁력은 내가 더 높다’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당 지도부가 나서지 않는 한 그는 마지막 당내 경선일(6월 3일)이 아니라 8월 25~28일 민주당 전당대회까지도 사퇴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후보의 경륜과 검증 필요성 등을 사퇴 불가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오바마는 흑인이어서 결국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6일 경선에서 오바마는 흑인 유권자로부터 90%의 몰표를 받았다. 경선 초반에는 친(親)흑인 정책을 편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흑인 유권자의 높은 지지 때문에 이 정도의 몰표 현상은 없었다. 오바마가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여성 간의 혼혈이기 때문에 오바마가 과연 흑인인지에 대해서도 흑인들은 상당한 의구심을 가졌다. 2006년 12월 조그비 여론조사에서 흑인 중 66%만 오바마를 흑인으로 간주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선 과정에서 오바마는 결국 ‘흑인 후보’가 됐다. 그는 흑인이 유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8개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 반작용으로 최근 백인 유권자의 60% 이상이 힐러리에게 쏠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13일 경선이 치러지는 웨스트버지니아는 흑인 유권자가 5%밖에 안 된다.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오바마는 백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본선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9일 아메리칸리서치 그룹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힐러리는 66% 대 23%로 오바마에게 43%포인트나 앞서고 있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원끼리 치르는 당내 경선에서는 인종이 결정적 변수는 아니었다. 인종문제가 개입되면 응답자들이 본심을 숨겨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상식도 민주당 경선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본선은 다르다. 최근 공화당 일각에선 오바마를 상대하게 되면 매케인 후보가 유권자 15%의 표를 거저먹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AP통신이 4월 중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인 유권자의 8%는 흑인 대통령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특히 백인 노동자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게다가 ‘오바마는 이슬람 신자이며 코란에 손을 얹고 상원의원 취임선서를 했다’는 풍문이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
매케인은 오바마와 라이트 목사의 관계를 선거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단서를 달았다. “이 문제는 오바마와 미 국민 간에 논의돼야 한다.” 매케인은 ‘인종 카드’ 사용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망국적인 인종감정’을 유발할 위험성보다 눈앞의 승리가 더 급한 게 정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매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와 라이트 목사의 관계를 주제로 한 TV광고를 남부 지역에서 내보내고 있다.

오바마는 3월 18일 ‘보다 완벽한 통합을 위하여’라는 연설에서 인종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매체의 격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미 언론 사이에선 최근 ‘오바마도 다른 정치인과 별다를 게 없다’는 시각이 번지고 있다. 본선에서 인종문제가 뜨거워질 때 언론이 어떻게 이를 다룰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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