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어린이의 성인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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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속담에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예쁜 자식 매 한대 더 때리라고 했다』는 게 있다.물론 미운 자식일수록 귀여워하는 체하면서 키우고 사랑스러운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한데 언제부턴가 다른 해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했던 옛날에는 자식들이 먹고 싶어하는 것을제대로 먹일 수 없었고,먹겠다고 보채는 자식들을 달래자니 매로다스릴 수밖에 없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그럴 때의 애처로운 부모 심정을 은유적(隱喩的)으로 나타낸 게 이 속담이라는 얘기다. 다소 우스개가 섞인 해석이지만 요즘 부모들이 자식 다루는것을 보면 그런 해석도 전혀 엉터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야 큰 차이가 있을 수 없고,생활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보니 이것 저것 먹겠다고 떼 쓰는 자식에게「떡」대신「매」를 주는 부모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경제 상태가 호전되면서부터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게 음식문화고,무엇이든지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눈에 띄게 변한 것이 청소년들의 체격이다.매년 실시되는 학생체격검사 결과에 따르면 키.몸무게.가슴둘레에서 급격한 신장률을 나 타낸다.
국민학교 6년생의 경우 10년전에 비해 키는 5~6㎝,몸무게는6~7㎏,가슴둘레는 2~3㎝씩이나 늘어나고 있다니 이제「왜소한동양인」이란 선입견도 벗어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청소년 체격의 이같은 급격한 신장 추세가 과식이나 편식,그리고 운동 부족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그런 것들은 비만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성인에게 있어서의 비만증이 당뇨.고혈압.뇌졸중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 는 것처럼 소아비만 역시 어울리지 않는「소아 성인병」의 주범 역할을 하기때문이다.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밥보다 햄버거나 분식을,찌개.김치보다 수프나 샐러드를 좋아하는 풍토에서 어린이의 비만증이 문제가 되는것은 당연하다.교육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
고교생중 비만증.당뇨등 성인병 증상을 보인 학생 이 국민학생 2만2천여명을 비롯,5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배고파 허리를 졸라매야 했던 시절에는 「뚱보」가 건강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화(禍)의 근원일 수도 있다.현명한 부모라면 지금이야말로 「떡」보다「매」로 사랑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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