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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라이트 목사 주장 소름끼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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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사진·左) 상원의원이 결국 정신적 스승이던 제레미아 라이트(右) 목사와 절교할 뜻을 비쳤다.

그는 지난달 29일 오후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 살렘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라이트 목사가 또다시 도발적인 발언으로 파문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에 들어선 오바마는 “라이트의 주장은 소름 끼치는 것으로 내 생각과 모순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모든 미국인을 화나게 한 만큼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화나는 건 그의 지난번 발언(갓 댐 아메리카 등)에 대한 나의 비판을 정치적인 제스처로 깎아내린 것”이라며 “라이트는 무례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20년 전 내가 본 사람과 다르다. 이제 그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우리의 관계는 크게 손상됐다”고 강조했다.

라이트는 40여 일 전 미국을 비난하는 설교 테이프로 물의를 빚었다. 흑인인 그는 설교를 하면서 “미국 정부는 우리(흑인)에게 마약을 주고 있고, 우리를 가두기 위해 더 큰 감옥을 짓고 있다”며 “흑인은 ‘갓 댐 아메리카(빌어먹을 미국)’를 외쳐야 한다” 고 말했다. 이 연설로 같은 흑인인 오바마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라이트가 지난달 27일 미 유색인 지위향상 협회 연설(디트로이트), 28일 내셔널 프레스 클럽 강연(워싱턴)에서 다시 한번 자극적인 얘기를 했다. 그는 ‘갓 댐 아메리카’ 발언 파문은 흑인 교회를 공격하기 위한 언론의 왜곡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흑인 등 소수인종을 말살하기 위해 에이즈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흑인 이슬람 단체인 ‘이슬람 국가(Nation of Islam)’의 지도자로, 유대인에 적대감을 표출해 온 루이스 파라칸을 지지한다고도 했다.

다수의 미국인은 그의 발언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오바마가 회견을 청한 건 라이트의 언행이 6일 실시될 노스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해서다. 오바마는 두 곳에서 승리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승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그런 그에게 라이트의 돌출 발언은 심각한 골칫덩이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라이트의 새 발언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의 분위기는 힐러리에게 다소 유리한 쪽으로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베이 USA 조사에 따르면 힐러리는 한때 20%포인트 정도 뒤졌던 노스캐롤라이나(4월 26∼28일 조사)에서 오바마와의 격차를 5%포인트로 좁혔다. 박빙이었던 인디애나(4월 25~27일)에선 오바마를 9%포인트 앞섰다. 갤럽이 29일 공개한 전국 여론조사에선 비록 오차범위지만 힐러리(47%)가 오바마(46%)를 추월했다.

그런 가운데 힐러리는 마이크 이즐리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지지를 확보했다. 이즐리는 노동자 계층에서 상당히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힐러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AP통신 등은 보도했다. 만일 힐러리가 흑인이 많은 노스캐롤라이나, 오바마 지역구인 일리노이의 인접지역인 인디애나에서 모두 승리한다면 오바마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역전패를 당할 수도 있다.

오바마는 이상 기류가 확산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했지만 그게 얼마나 통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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