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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즐겨하는 '키덜트 문화'가 새 장르 창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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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혜실 경희대 국문과 교수

사람들이 어려지고 있다. 인터넷에 만화적인 아이콘을 사용하는가 하면 드라마나 영화에 10대 주인공이 등장하거나 아예 10대 작가들이 쓴 인터넷 소설과 그것을 소재로 한 드라마.영화가 인기를 끈다. '낭랑 18세'만 해도 그렇다. 18세의 비행 소녀와 엘리트 검사의 결혼.신혼생활을 경쾌한 터치로 그린 이 드라마는 언뜻 만화영화 '캔디'를 떠올리게 한다. 18세라는 미성년에 근접하는 아슬아슬한 나이만 해도 그렇거니와 상황 설정도 황당하다. 이제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만화에 심취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런 키덜트(kidult, 아이란 뜻의 kid와 어른인 adult의 합성어) 문화는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 '놀이성'이 만연한 데서 연유한다. 사람들은 냉엄하면서도 따분한 현실을 재미로 장식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문화의 근저에는 영상에 대한 현혹이 깔려 있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온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은 사람들을 '놀이형 인간'으로 바꾸고 있다.

동화나 소설 등 문자매체를 즐길 때는 한바탕 놀이의 세계에 빠진 후 쉽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통신과 디지털 매체의 발달을 이용한 이야기 장르들은 엄청난 몰입성을 지닌다. 특히 감상자가 키보드나 마우스를 눌러야 화면이 움직이는 디지털 매체의 경우 그 상호작용성 때문에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매체에 익숙해 지면 가상공간의 이야기를 일상에까지 적용하고 싶어진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키덜트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인들의 '향수'가 한몫 한다. 빠른 속도감과 무한경쟁에 지친 현대인은 일종의 심리적 퇴행 현상을 보인다. 순진하던 유년 시절이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상품이 대거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고풍 패션이 유행하거나 영화 '친구''품행 제로' 등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화와 드라마, 인터넷 소설과 영화, 이모티콘처럼 그림과 문자의 경계가 해체되는 현상도 디지털 퓨전 시대의 특성이다. 인쇄 매체 시대에는 문학이 주된 장르였다. 문학이 스크린으로 옮겨가면 영화가 되고, 공간으로 가면 연극, 그림으로 가면 만화가 됐다. 저마다 매체에 맞는 이야기 문법이 개발됐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는 게 정통 문학이고 좋은 드라마였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는 모든 것이 쉽게 조합되는 데다 상호적용이 가능해지면서 표현 방식도 섞이게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상에서는 상호작용성 때문에 '대화'의 환경이 조성된다. 말하는 환경에서 글을 쓰니 당연히 이모티콘처럼 말할 때 표정이나 감정이 실린 표현이 문자에 스며드는 것이다. '낭랑 18세'에서 등장인물의 감정을 하트표시.느낌표 등으로 처리하는 것이나, 오락이나 토크 프로에서 대화자의 말이나 행동 중 강조할 부분을 문자로 처리하는 것도 마찬가지 예다. 디지털 시대에는 '퓨전'이 잡스러움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장으로 용인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최혜실 경희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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