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버스가 들어왔다, 세상과 통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충북 옥천군 옥천읍과 동이면 가덕마을을 운행하는 안남1번 4호차 이진훈 기사가 장날을 맞아 읍내로 나가는 노인들의 짐을 들어주고 있다. 충북에서도 오지인 이 마을에는 1일부터 버스가 들어와 주민들이 강을 건너 읍내로 가는 불편을 덜게 됐다.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마을 입구까지 버스가 들어와요.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다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 편하죠.”

10일 오전 10시30분 충북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가덕마을. 마을회관 앞에 10여 명의 노인들이 보따리를 놓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닷새 만에 한 번씩 서는 옥천 5일장이 열리는 날로 농민들이 고추와 오이·상추·더덕 등 들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장에 내다팔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얘기를 나눴다. 예전 같으면 버스를 타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뒤 3㎞가 넘는 비포장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1일부터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크게 줄어들었다. 버스가 읍내로 들어가는 1시간 동안 정류장마다 2~3명의 노인들이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인사도 건넸다. 손자를 업고 읍내에 나간다는 이순덕(70) 할머니는 “손주녀석 운동화도 하나 사주고 병원에도 들를 것”이라며 “버스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낸다”다고 했다.

가덕마을에 사는 김원순(72) 할머니는 “버스 타고 장에 갈 수 있다니 꿈만 같구먼. 읍내 가는 게 너무 편해졌어”라고 말했다.

가덕마을 김민식 이장은 “버스가 다니고부터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1~2시간 걸어 다니던 불편을 덜었다”며 “주민들을 위해 버스운행을 결정해 준 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버스를 타고 나가면 옆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많이 듣게 된다”며 “이제야 세상 살 맛이 난다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오지마을에 버스 운행=충북도 내 오지 중 한 곳인 가덕마을. 28가구 67명의 주민이 사는 이 마을은 금강에 가로 막혀 바깥 출입 때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뒤 안남면 지수리까지 3㎞가 넘는 비포장 길을 걸어야 했다.

경운기가 있는 집에서는 경운기를 타고 나가 다시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여름 장마철이면 집중호우로 강물이 불어 길이 막히는 바람에 며칠씩 고립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던 이 마을 입구에 지난해 6월 길이 230m, 폭 7m의 가덕교가 놓이면서 육로가 뚫렸다. 길이 뚫렸지만 승용차나 트럭이 없고 운전을 못하는 노인들에게 다리는 무용지물. 읍내 나가는 길은 예전과 다름 없었다.

주민들은 2월 마을을 찾은 한용택 옥천군수에게 “버스를 운행해달라”고 건의했고, 군은 고심 끝에 옥천버스㈜에 의뢰해 25인승 버스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용객이 적어 적자가 뻔한 노선이지만 칠순을 넘긴 고령의 노인들이 대부분인 주민들이 교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이달 1일부터 가덕마을에 버스가 들어왔다. 비록 25인승의 조그만 버스지만 마을주민들에게는 고급 승용차 못지 않은 소중한 교통수단이 됐다. 주민들은 버스가 처음 들어온 날 개통을 기념해 마을잔치도 열었다. 마을회관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 뒤 시승행사도 가졌다.

김원순 할머니는 “무릎이 쑤셔도 걸어 다니는 게 어려워 병원 가는 게 엄두나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나간다”며 “며칠 타 보니 버스처럼 편안한 게 없다”고 했다.

옥천읍~가덕마을을 운행하는 안남1번 4호차 운전기사 이진훈씨는 “처음 버스를 몰고 들어갔을 때 주민들이 너무 반겨줘 몸 둘 바를 몰랐다”며 “비록 하루 세 차례 운행하는 노선이지만 주민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안전하게 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옥천군 관계자는 “수익을 따져보면 무조건 밑지는 장사지만 버스회사에 적자 일부를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노선을 신설했다”며 “하루 1~2명의 승객이라도 편안하게 모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신진호 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ADVERTISEMENT
ADVERTISEMENT